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뜰 Aug 23. 2019

기꺼이 나를 세상 앞으로 내미는 엄마의 밥

 엄마와 나의 사이를 한 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어색한 모녀'다. 친구들은 엄마랑 쇼핑도 하고 목욕도 가고 미주알고주알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한 나무에 두 개 멀찍이 떨어 뜨려 놓은 나뭇가지처럼 살갑지 않다. 함께 살 적에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고, 또 유일하게 그것 때문에 늘 지지고 볶고 싸운 이유는 '밥'이다. “밥 많이 먹어라, 밥 먹었니, 왜 안 먹니, 밥 먹어야지, 밥밥밥밥밥....”

누구는 도대체 그걸로 왜 싸우냐고 하지만 정말 내겐 늘 숨 막히는 일이었다.


 몸이 약했던 엄마는 무조건 일 순위가 내 건강이다. 건강하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하고, 그 기준 또한 광범위해서 과자, 콜라, 라면 뭐든지 다 잘 먹어야 한다는 주의시다. 그래서 늘 우리의 대화는 ‘요즘 날씨로 시작해 건강이 최고니까 넌 밥을 잘 먹어야 해. 너무 안 먹어.’라고 끝난다. 이렇다 보니 점점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고 밖에 나돌면서 엄마 밥은 지긋지긋하단 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살았다. (아마 삼십 년 가까이 밥 때문에 유일하게 혼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다.)


 부모님 둥지를 떠나 직접 밥을 차려 먹어야 할 때가 되니 엄마가 해준 집밥이 제일 그립다. 내게 콩나물무침 , 시금치 반찬, 소시지,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특별식이 되어 버렸고, 엄마처럼 손길 한 번 뚝딱하면 나오는 요리가 안 되는 나는 씻고 조리하는 것도 귀찮아 한 가지 메뉴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게 배를 채운다.


 처음에는 엄마 밥 없이도 잘만 사네  싶었지만 역시 엄마 밥은 아플 때 진가를 발휘한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너무 더워 몸에서 보양식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의 빨간 소고기 뭇국'이다. 어릴 때부터 빨간 국 애칭으로 불리던 이 국은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인데 계절 담뿍 머금은 무를 툭툭 깍둑 썰고, 소고기 두 주먹, 대파 큼지막하게 쓱쓱, 고춧가루 팍팍 넣고 마늘과 국간장으로 대강 간을 맞춘다. 그다음 물 넣고 한 소끔 끓이면 보글보글 빨간 국 완성.


 내 기억으론 유치원 때부터 이 국에 밥 말아 계란 프라이, 소시지와 곁들여 맛있게 먹었고, 커서는 무말랭이, 고들빼기, 오징어 젓갈 등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모든 반찬과 무난하게 어울리는 국이다. 기본이 있으니 어떤 반찬이 비집고 들어 와도 튀는 맛없이 순조롭게 입 안에 착 붙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소울푸드인 셈인데 원래부터 국에 밥 말아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모든 국을 애정 하지만 빨간 국만큼은 몸과 마음이 힘들 때 훨씬 많이 생각난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식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국을 보면 침이 꼴깍 먼저 반응한다. 이 날은 엄마 잔소리도 거뜬히 받아치며 정신없이 밥을 말아 한 숟갈 입에 넣고 계란말이 쏙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정서는 엄마의 영향이 깊다. 아빠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고, 매일 투닥거리며 종일 말 안 하는 날이 많아도 그 시간을 수만 번 쌓아 올리며 겪은 희로애락 두께가 컸다.


 내게 엄마는 늘 아픈 사람이어서 집에서 혼자 놀기도 잘하고, 반면에 밖에 나가 친구와도 잘 놀고, 고민이 있으면 엄마에게 털어놓는 것보다 일기에 쓰면서 홀로 삭히는 게 쉬웠다. 운동회 날도 아픈 엄마를 부르지 않고 혼자 씩씩하게 계주 달리기를 했고 친구 어머니가 해준 밥도 잘 얻어먹으며 엄마 손길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이런 엄마와의 관계는 내 독립성 발달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홀로 잘 컸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안다. 대상포진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났을 때도, 백수 딸 점심을 차려 준 엄마. 뭐라도 한 숟갈 더 먹이려고 애쓴 엄마 마음이 내 수호신이었다는 걸. '엄마'하고부르면 '밥 해줄게' 말해주는 그녀가 있어서 이 세상이 든든하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이 세상을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건 언제든 원할 때 엄마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든든함 때문이다.


엄마에게 오랜만에 카톡을 보냈다.


"엄마, 빨간 국 해줘. 먹고 싶어."

"응, 알았어."


 올해 처음 먹는 엄마표 빨간 국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릴 땐 소파에 누워 있다가 "밥 먹어라~"하면 차려져 있던 음식이었지만 이젠 엄마 옆에서 무도 썰고, 어떻게 만드는지 흘끗 보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엄마는 내 뒤에서 탁탁탁 도마에 소리를 내며 칼질을 멈추지 않으신다. 나는 언제까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문득 엄마의 모든 음식 레시피를 배워 나중에 엄마가 옆에 없을 때 해 먹어야겠다 싶지만 ‘아직 멀었어’라고 고개를 젓는다.


 다 큰 자식의 밥 먹고 싶단 말 한마디에 종종걸음으로 부엌을 오가는 엄마의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육십이 넘고, 칠십이 되어도 엄마는 늘 똑같은 저 모습일 것 같은 건 욕심일까?

문득 엄마가 '엄마가 해주신 굴젓 참 맛있는데..'라고 외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먼 훗날의 내 모습이 겹치는 것만 같다.


 나에 대한 염려와, 안부와, 사랑을 가장 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전해주는 엄마의 밥. 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지겨움에 도망갈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돌아오게 되는 엄마가 해주는 밥. 그 누구에게도 영원하지 않아 더욱 함께할 시간이 짧을 밥. 기꺼이 나를 세상 앞으로 내미는 엄마 밥 덕분에 이렇게 클 수 있었다. 고마워,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을 지키는 말, ‘내가 알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