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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ug 20. 2019

자존감을 지키는 말, ‘내가 알잖아’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단어도 다르지만 뉘앙스는 더 다르다. 비슷한 느낌인 듯해도 내 경우로 보자면 나는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땅바닥에 끌고 다니는 타입이랄까. 그야말로 존심은 세서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하지만, 그 와중에 자존감은 낮아 그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나를 들들 볶는 성격이다.


 쓰면서 보니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30여 년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렇게 사람 구실 하며 조금이나마 넓어진 아량으로 지낼 수 있는 건 조금씩 '자존감 낮은 나를 받아들인' 게 크다. 그렇다. 받아들임.


 중요한 건 ‘자존감 낮은 나’에 있다. 어떤 일에 실수했을 때, 억지로 ‘난 괜찮아. 이번엔 실수였고 다음번엔 더 잘할 거야.’ 따위의 위로와 평가는 하지 않는다. '오늘 실수했네.'

끝.


 일처리를 잘못한 나를 끝까지 책망해서 결국 우울한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는 정신적 단호함을 발휘한다. 가만 보니까 나는 남의 눈치와 말 따위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그걸 내 멋대로 해석해서 스스로 지적하는 일이 더 많았다. 남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오해하며 살아왔던 거다.


 20대에는 무언가를 거창하게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싸이월드 속 친구들의 바쁘고 화려한 생활을 동경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았다. 노력은 1도 하지 않으면서 운이 없단 식의 신세 한탄만 길어졌다. 왜 나는 이것밖에 능력이 안 되는 거지? 왜 멀쩡한 남자가 주위에 없지? 왜, 왜, 왜..?


 일이 안 되는 모든 이유에 '왜'라는 토를 달지만 정작 나는 로또도 사지 않고 1등을 바라는 못된 사람이었다.


 이십 대 중후반쯤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퇴근 후 잠깐씩 유튜브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공책을 사서 공부 내용을 끄적여 보기도 하고, 암기하는 일들이 재밌게 느껴졌다. EBS 수능 만점자에게만 들을 수 있었던 공부의 기쁨을 스무 살 중반에 처음 느꼈달까. 그때 굉장히 도움됐던 책은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로 그 안에 있는 책 목록을 도서관에서 다 빌려 읽을 만큼 ‘안다는 행복’이 머리에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문학을 접하고, 진급 시험 때문에 시작한 한국사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하면서 그렇게 다니기 싫던 직장도 그럭저럭 견딜만해졌다. 매일 컴플레인을 주고받는 실장과의 묘한 관계도 멀찍이 떨어져 볼 수 있었고, 혼자 해내야 했던 막막한 마케팅 업무도 무섭지 않았다. '될 대로 돼라. 할 만큼 했는데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의 태도가 형성되면서 1-10까지 큰 파동을 일으키던 불안이 1-5로 크게 줄었다.


 발바닥 언저리에 있던 내 자존감이 조금씩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나만 아는 열심'의 형태였던 것 같다. 껍데기만 두르고 근근이 버티던 사회생활이 끝나면 고요한 내 방 작은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으며 알아가는 배움을 손끝과 몸으로 익혔다. 더 좋은 곳으로의 이직을 위함도 아니고, 어디 당장 써먹을 데도 없던 지식이었지만 기분 좋은 정서적 만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당장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하는 상황은 똑같아도 그것을 해내는 내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저번에 JTBC 캠핑 클럽에서 이효리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스스로에게 감동했다는 말을 건네며, 남들이 몰라도 나 자신이 기특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말한 부분이다. 또 옛날에 이상순이 아무도 보지 않는 의자 밑 부분을 열심히 사포질 하길래 누가 알겠냐고 했더니 "내가 알잖아."라고 했다는 대답은 그동안 작게 이루어온 무수한 것들이 먼지 같은 내 자존감을 키웠겠다 싶었다.


 누구도 몰랐던 그날의 공부는 점점 열기를 더해, 주말에도 책과 필통을 싸서 도서관과 카페를 드나들게 했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노동요 삼아 한국사 연대기를 외웠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는 봄의 벚꽃길은 나 자신이 기특해 죽겠다는 뿌듯함을 안겼다. 남자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았고, 회사 일이 안 풀려도 걱정스럽지 않았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덜 흔들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뭉근하고 진득한 내 사생활이 공적인 생활을 견디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중생활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자존감이라는 건 ‘내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 가늠하는데서가 아니라 반대로 얼마나 낮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느꼈다.


 안 풀리고 더 꼬이기만 하는 상황이 내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안도감이 찾아오고 지금 순간만 어떻게든 견디면 나아지겠단 낙관적인 자세가 만들어진다. 또한 차마 글로도 쓸 수 없는 몇 번의 초라했던 날들을 겪고 나니 가장 밑바닥의 감정을 본 여유도 생겼다. 지금도 온갖 걱정과 불안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 때면 기억 속 한 장면을 찾아간다. 너무나도 외롭고 슬퍼서 울었던 9호선 지하철 역 화장실로.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깜깜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우울한 미래만 단정 짓던 그때의 나는 지금 이토록 잘 살고 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머리카락 잔뜩 엉킨 화장실 배수구를 청소하고, 내 손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생활의 민낯은 겸손을 배우게 하고 그동안 겪은 실패한 시간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 한 실수를 내일 다시 할지언정, 이 실수 반복에 집착하지 말기로 하자. 두 번 실수는 없다란 말이 사람을 얼마나 움츠리게 하는지. 그깟 실수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네 번이면 어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오늘 실수? 어쩔 수 없지 뭐.

그러곤 끝이다.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건 실수의 반복이 아니라 그 실수를 바라보는 전전긍긍 애타는 내 마음이다. 중요한 건 환기. 자책하는 시간을 벗어나 다른 일을 무심히 하면서 다음번에 실수했던 일을 할 때에 외부의 어떤 기운이 잘 해내도록 도와줄 거라 믿어 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몸에 새긴 열심의 형태가 되고 이게 나만의 '신'이 되어 나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해보는 거다.


 지금도 나는 회사 생활이 지치고 재미없을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 팀원들 몰래 나의 사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인데, 하루 8시간 이상 보내는 곳을 벗어나서 이곳에 지극히 개인적인 말들을 쏟아 내면 텁텁하고 고우한 일상이 견딜만해진다. 일종의 환기 장치다. 회사와 일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활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 작은 일뿐이라고 의식한다.


 마치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적 부담감을 재빨리 반대쪽의 생활 안정감으로 오게 하고, 이 안정감이 무기력으로 바뀔 때쯤 다시 치열함으로 걸음을 뗀다. 나만 아는 '열심’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기꺼이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고 균형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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