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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Oct 13. 2019

저는유, 신중보다는 전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혀유

허세끼 쪽 뺀 그의 사랑법

 강하늘이 공효진에게 다가가는 저 직진 사랑이 참 좋다.

 

 10월 9일 한글날, 휴일답게 tv 리모컨을 돌리다 우연히 드라마 하나를 보았다. 공효진(동백역)과 강하늘(용식역)이 나오는 모양인데 대사 하나하나가 참 찰지고 사랑 모양이 신선하다. 미혼모에 술집 장사로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 살아가는 공백과 마을 경찰인 용식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인데 자꾸만 용식이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의 '직진 사랑법' 때문이다.



동백: 왜 자꾸 예쁘대요. 왜 자꾸 나보고 자랑이래. 나는 그런 말들 다 너무 처음이라 막 마음이 울렁울렁..


용식: 내가 매일매일 맹한 동백 씨 안 까먹게요. 당신 얼마나 훌륭한지 말해 줄게요. 그러니께 이제 잔소리하지 말고요. 그냥 받기만 해요. 좀


 태어날 때부터 재수도 없고, 복도 없고, 팔자까지 사납단 소리를 듣고 자라며 이제는 스스로 그런 생각에 갇혀 사는 동백이를 끈질기게 앞으로 잡아당기는 용식이의 사랑 방법은 전념이다.


 드라마 내내 동백을 향한 용식의 고백은 묵직하지만 꽤 진솔하게 강한 펀치를 날린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계속 밀어내려는 동백도 그의 고백 앞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풀리는 이유는 하나. 화려한 수식어 일절 없이 일직선으로 닿는 이 남자의 진심이 자꾸만 동백이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즘 들어 깨닫는다. 안정된 직장이 있어서, 집에 돈이 좀 있어서, 착해서, 예뻐서, 요리를 잘해서 등등 얼마나 많은 이유를 갖다 대며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설명하지만 사실 다 쓸데없다. 그냥..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냥’이라면 내가 영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란 걸 내가 알아챈다. 전제조건 없이 쭈글쭈글한 모양 이대로 나를 좋아한단 말이 큰 위로가 되어 준다. 그래서 촌므파탈 직진 용기로 동백이를 지키고 보호해 가는 이 생소한 사랑법이 참 부럽다. 연애 기술이랍시고 밀당하는 방법이나 상대보다 덜 좋아하고 더 사랑받는 법 따위의 여우 같은 이야기 말고, 미련하고 우직하게 한 사람 마음만 꾸준히 두드리는 곰 같은 이야기가 이상하게 멋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휘청이며 걷는 사람도 똑바로 서게 하는 힘이 있다. 작은 말에도 상처 받을까 몇 겹씩 마음에 두르고 있는 띠를 부드럽게 풀고 이젠 그것 없이도 당당히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아마도 이건 ‘존중’의 힘인 것 같은데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것도 옆 사람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가 만들어 낸 조각물일 것이다.


 동백의 전 연인(종렬)도 평소와 다른 동백의 얼굴과 말투, 분위기를 감지하고 연애한다 느끼듯, 나를 지지하고 한결같이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내 어깨가 곧게 펴지고 작은 영향에도 잘 휘둘리지 않는다. 연인에게서 받은 한결같은 믿음이 큰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처럼 내 마음에 안정적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결혼하길 잘했단 생각을 한다. 워낙에 외로움을 타는 데다가 자주 휘청일 때가 있어서 비혼으로 살았다면 늘 끊임없는 사랑을 원했을 거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남편이 생기니 심적으로 많이 안정되면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사랑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한 사람이 나를 꾸준히 변화시킨 결과임은 분명하다. 이 좋은 영향은 '내가 존중받고 있다'를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준 남편 덕이다. 설거지해줘서 고마워, 파마시켜줘서 고마워, 커피 사줘서 고마워.. 사소한 일까지도 고맙다 표현하는 그이 덕분에 내 작은 행동도 대단한 것처럼 여겨진다. 아마 용식이도 동백이 옆에서 끊임없이 “예쁘다, 괜찮다, 누가 뭐래도 잘 살고 있다”라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동백의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게 용식이 같은 직진 사랑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NO다. 좋아하는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상대로 다시 물으면 YES겠지만 사람이 대상이면 꾸준히 흔들릴 것 같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란 물음에 사랑은 안 변해. 사람이 변하지”라고 말하는 이영애가 내 안에도 있으니까. 내 마음과 다른 상대를 어떻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볼 수 있을지 겁부터 난다.


'나는 이만큼 해줬는데 왜 쟤는 안 해줄까, 나만 더 좋아하는 같은데 쟤 진심은 뭘까.' 이상하게도 내 진심을 내보이는 일이 이미 사랑에 패배한 기분을 들게 하는 요즘 사랑이 버겁다.


 덕분에 이 드라마를 아니 용식이를 보며 사랑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상대를 진실하게 바라보는 예의. 언제든 휘발될 수 있는 사랑에 존중의 무게를 더하는 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바꾸는 마법. 옆에 있는 남편에게 그저 지금 열심히 살고 있어 줘서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동백 씨, 남자 얼마나 만나 봤어요? 세상 남자가 김종렬이 하나예요? 그 나물에 그 밥이면 나랑 뭐하러 썸을 타요?

나랑은 안 해봤잖아요?

동백 씨, 저랑 지대루 연애하면요, 진짜요. 진짜루 죽어요! 매일매일 사는 게 좋아가지고 죽게 할 수 있다고요.


 사랑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매일매일 사는 게 좋아지게 나의 그에게도 전념해 봐야겠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요리로 날 감동시키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존경하면 우리도 더욱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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