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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22. 2019

트로트를 아는 나이

트롯, 인생이 거기 있다

 요즘 10대들은 탑골 온라인 공원에서 내가 워크맨으로 들었던 노래를 듣는다고 한다. 엎드려 영어 숙제를 하며 중얼거렸던 중학생의 하루 배경 같은 노래를 유튜브로 재생하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그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나도 요즘 트로트를 그렇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열세 살쯤이었을까?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댁에 온 나는 이모부와 싸우고 친정에 온 막내 이모와 지냈다. 어른들은 애들이 어려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해 옆에 누가 있건 쉽게 말하지만 훨씬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대화는 늘 귀에 콕콕 박혔고 그때도 이모부와 싸운 얘기는 흥미로웠다. "홍 서방이 어떤 여자랑 통화를 했네, 마네. 사돈이 뭐라고 했다더라" 등등 눈은 만화에 가 있어도 귀는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이모 말고 낯선 여자와 전화를 한 이모부가 한참 밉기도 했다. 그래도 철없던 나는 방학 때 만난 이모랑 사촌동생이 좋았고 이모부가 오랫동안 안 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 것 같다.


 어느 날 할머니와 엄마, 이모들과 함께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다. 다들 무슨 노랠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유독 아직까지 내 가슴에 남는 장면은 이모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구슬프게 부른 거다. 그때는 어려서 노래 가사의 뜻도 잘 몰랐는데 왜 내 마음이 아렸었는지 모르겠다. 선명하진 않지만 막연히 이모가 이모부를 보고 싶어 한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싸우고 친정까지 왔으면서 왜 이모부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지. 그 알 수 없는 어른의 세계가 트로트에 가사에 녹여 있었음을 열세 살 소녀만 몰랐을 뿐. 뽕짝 리듬에 가려져 있던 가사 1절과 2절에 이모의 마음과 바람이 모두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툭하면  아프고  체해서 종종 엄마 옆에 힘없이 누워 있곤 했다. 뜨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엄마가 옆에서 사부작사부작 배호 아저씨 카세트테이프를 트는  들었다. 송대관, 태진아, 주현미는 많이 들어 봤어도 배호는 처음 듣는 이름. 엄마는  아저씨의 테이프를 구하러  가지도 않는 음반 가게에도 가고   좋은 카세트를 사기 위해 마트에도 갔다.


 이 글을 쓰며 뮤직 어플 지니를 켜고 배호를 검색해 본다. 그리고는 오늘 날씨와 어울리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튼다. 묵직한 저음으로 흐느끼며 부르는 배호 아저씨의 목소리를 따라 이별한 연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짐작해 본다. 사랑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중후한 목소리로 말없이 낙엽송 고목을 끌어안고 우는 모습이, 수많은 사연을 가진 연인들이 그 사연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는 장면이 외롭게 떠오른다.


 비 오는 창밖을 보며 집에 누워 있노라면 나는 또다시 엄마 옆에서 가만히 배호 아저씨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들으며 스르르 자는 때로 간다. 손바닥만 한 카세트에서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와 맞물리며 삼각지 로타리에서 이별에 슬피 우는 아저씨 목소리가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 울리던 장면. 늘 그 순간을 기억하자면 회색이란 색깔을 손에 잡은 듯한 느낌, 슬픈 감정을 몸으로 직접 껴안은 것 같은 기분이다. 비에서 오는 그 아련하고 촉촉한 감성을 어릴 때 처음 배호 아저씨 음악을 통해 접했다.

정통 트로트로 분류하기엔 클래식한 면도 살짝 묻어 나는  노래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에서 나도 좋아하는 노래로 이어지고 있다. 님을 향한 그리움을 쿵짝 리듬에 은유로 빗대어 변심한 그에게 투정하듯 말하는 성인 가요. 그래서 요즘 유산슬 씨의 활동이 반가운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트로트를 놓지 않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연주자들의 모습에 반하고 있는 중이다. 정성스러운 그들만의 리그는 몇십  동안  길을 고집하며 걸어온 자의 여유와 쑥스러움이 보이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나 반추하게 만든다.


 기차 경적을 넣느냐 마냐의 디테일, 피아노와 드럼, 기타, 베이스 장인들이 한 땀씩 따는 리듬, 코러스까지 얹어 화룡점정을 찍으면 노래교실에서부터 서서히 유행되는 노래가 있고, 회갑연과 고희연, 전국 축제에서 알토란같이 불리는 노래도 있고, 아쉽지만 사라지는 노래도 있는 트롯의 세계가 부각된다. 마치 '일'이란 이렇게 되는 거라고 말하듯 ‘이 세상 뭐 하나 싶게 되는 일이 없는’ 걸 알면서도 역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저마다의 박자로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


 그저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빤한 가사만 올려 흥을 돋우는 음악으로만 치부했던 트로트를 b급 노래라고 여겼다. 엄마는 왜 그런 노랠 좋아하냐고 타박한 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베토벤의 운명’이 엄마의 울분을 달랠 수 없고, ‘김광석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씩씩거리며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는 엄마 화를 삭힐 수 없었다. 이럴 땐 '내 나이가 어때서' 혹은 가요무대를 켜 놓고 그 음악을 흥얼거리며 하고 싶은 말을 가사에 빌려 내뱉어야 속이 풀린다. 아빠에게 은근한 타박을 받으면서도 매일 아침 나갔던 노래교실은 엄마의 하루 숨통이었을 것이다. 또래 아줌마들과 함께 모여 신나게 손뼉 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침. 그게 트롯의 힘이었다.


 아직  플레이리스트에 트로트가 재생되는 날은 없지만 어디에서 들려오는 트롯을 집중해서 듣기도 하고, 가요무대를 보는 엄마 옆에 진득하게 앉아 가사를 따라 불러 보기도 한다. 어느 노래든 이야기와 인생이 담겨 있지만 트로트만큼 인생을 가볍고 진지하게 표현할  있는 장르가  있을까 싶다.


 내가 꼽는 트로트 가사의 No.1은 김국환 아저씨의 '타타타'다. 전국 노래자랑에서 여러 번 듣던 아저씨 노래를 아무 의미 없이 흥얼거리던 꼬마가 이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 부른다.

공수래공수거를 어느 누가 허허허 웃으며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과 불경, 코란엔 지켜야 할 규칙과 말씀이 있지만, 트로트에는 불러야 할 운율과 내 마음속 할 말이 있다.


 나도 유연하게 음을 꺾으며 제대로 뽕 맛을 내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은 트로트지만 아직 인생의 깊이가 얕은 건지 영 맛이 없다. 지금은 고작 은유적 가사에 담긴 의미를 정직하게 해석하고 마음에 담을 뿐, 트롯을 즐기는 나이는 아직 먼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처럼 빨래를 갤 때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정말 난 몰라~ 가슴만 두근두근~ 아아 사랑인가 봐~~’를 간드러지게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전에 그 예매하기 어렵다는 송가인 콘서트에 부모님을 보내드려야겠다. 보일러 대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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