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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an 10. 2020

꼰대와 밀레니얼,  나는 그 사이에서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내 나이는 팀장님 다음으로 많으면서 입사 연차는 막내였다. 70년대생 팀장님 < 80년대생 나 < 90년대생 동료. 팀장님과 일곱 살 차이, 나이로 제일 어린 동료와 여섯 살 차이가 나서 중간에 끼었다. 작년에 사람이 한 명 바뀌면서 올해 마흔이 되는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는데 내 자리가 왠지 더 애매하게 중간에 껴버린 이유는 연차도 중간쯤 됐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인즉슨, 팀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일아야 한단 뜻이고 필요한 순간 내 의견이 알맞아야 한단 뜻이다. 이제 순진한 얼굴로 ‘아무것도 몰라요’ 시전은 끝났고 내 위치에 맞는 역할이 필요했다.


 나는 꼰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워라밸과 개인적 특성을 중시하고 나이 어린 선배 동료에게 일절 사생활 이야기를 캐묻지 않으며(종종 내 얘기는 하지만) 나름 쿨하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일한 지 막 2년 정도 지나니 내가 은근 “라떼는 말이죠~”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업무 이야기는 아니고 ‘2002 월드컵’ 때 뭘 했냐(나는 고딩이었고 그녀는 초딩, 팀장님은 대딩 때 맥주 마시며 봤다고 해서 크게 놀람), IMF 터져서 내 돌반지는 나라에 내놨고 기대했던 수련회도 취소됐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20대 동료는 이런 나의 얘기에 옛날 TV에서나 보는 것처럼 놀라워했다. 같은 1997년에 이토록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니. 그동안 늘 비슷한 연령대의 직원들과 가깝게 일하긴 했었지만 이젠 내 나이가 90년생들과 일해야 하는 나이가 됐단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몇 주 전 회식 자리. 그동안 점심때만 하다가 그 날은 저녁에 술 한잔을 곁들이게 되었다.


"자기들, 회사는 무조건 숫자야, 숫자. 월급 더 받고 싶으면 성과를 숫자와 통계로 보여줘야 해. 더럽고 치사해도 어쩔 수 없어. 숫자가 아니면 설득이 안된다고."


 팀장님은 이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며 그동안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2020년도 파이팅하자 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무슨 질문을 던질 때마다 기-승-전-숫자로 끝나니 맥이 점점 풀렸다.


"주임님, 팀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무슨 회사에 충성한 사람처럼.. 적어도 팀원 편에 서줘야지 왜 임원도 아닌데 임원처럼 생각하고 말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기본적으로 회사는 이윤을 창출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고, 효과적인 인사 관리를 위해선 '성과' 즉 '숫자'로 직급 위치를 매겨 월급의 금액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요즘 밀레니얼들은 '일은 일이고, 나는 나'의 개념이 명확하다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면에선 꼰대에 한 발짝 다가선다. 일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티 내는' 업무 방식을 보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연봉 계약할 때도 남자 동기들이 군대도 다녀오고 나중에 가장이 되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며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도 봤다.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 무력감을 느꼈지만 반발 한번 하지 못하고 수긍한 채 성장한 직장인 이 바로 나다.


 그렇기 때문에 상사에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티 내려 없는 야근도 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알랑방귀도 뀌면서 가끔은 팀장님의 기분을 맞추려 애쓴다. 더럽고 치사해도 여기 조직은 양방향 소통보단 일방통행이 좀 더 일하기 쉬운 환경이니까. 요즘 애들이 보면 나도 상사 비위나 맞추는 꼰대처럼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나마 중간에서 하는 게 있다면 밀레니얼의 입장도 이해한다는 것?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feat. 황희 정승)


 솔직히 양쪽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막내 동료는 도대체 팀장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매일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자기한테 다 일을 떠넘긴다고 투정한다. 그 말도 이해하지만 실상 내 생각은 다르다. 아마 그녀는 나름대로의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실무가 아닌 위에서 우리의 업무를 컨트롤하고 확인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거기에 그녀의 상사가 지시하는 자잘한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지 모른다.(그것이 쓸데가 있든, 없든) 그래서 아마 우리가 의심하는 것처럼 팽팽 놀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직원이 상사의 업무를 논하고 평가하는 일은 아주 제한적인 면만 보고 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팀장님은 요즘 젊은 애들 비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한다. 우리 부서가 너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한 번 정도 야근하자고 하면 얼굴에 싫은 티가 너무 확 난다고. 너무 여유로운 것 같이 보이면 타 부서가 얕잡아 본다고 말하면서 애 없는 프리 한 삼십 대인 내게 은근슬쩍 야근을 할 거냐고 묻는다. 나도 물론 이유 없이 회사에 남는 게 너무 싫지만 타 부서의 시선에 대한 상사의 태도가 이해돼서 함께 남아 사무실 불을 밝힌다. 그렇다고 먼저 쌩하니 가버리는 동료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인의 할 일을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간다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니까.


 맥주잔을 부딪치는데 팀장님이 또 ‘성과’ 얘기를 한다. 아 진심 회식은 점심에 간단히..!


"자기도 이번에 통계 성과가 좋아서 자리 보존했던 거야~"


"아니, 누가 그걸 모른답니까. 다 아는 이야기를 꼭 그렇게 몇십 번씩 말하셔야 해요? 그냥 좀 수고했다고, 다독여 주심 안 되나요?”


 진심이야 아니었겠지만 마치 80년대식처럼 ‘하면 된다. 무조건 된다’고 말하는 팀장님이 너무 미웠다.


 유독 팀장님과 막내 동료는 성격도 비슷한 데다가 업무 지시도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기싸움이 잦다. 아마 나라면 무조건 수긍했을 프로젝트도 막내 팀원은 할 수 있을지 계산해 보고 궁금한 점도 그때그때 물어봐서 팀장님에게 약간 기어오르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래서 말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직적 강요를 풍기는 팀장님의 행동이 어찌 보면 이해도 된다.


“출근 15분 전에는 사무실에 와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니?”(지각 한번 한 적 없는데..)


“보는 사람도 많은데 머리랑 옷 좀 단정히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것도 아닌데..)


 신선한 아이디어에 굉장히 쿨하게 OK를 외치지만 기존의 조직 문화를 강요하는 팀장님. 이런 일에 속상함을 터트리는 동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들어줌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의 무게를 다시 끌려 주는 것뿐이다.


리더는 원래 고독한 법


 한참 곱창에 사이다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각자 대립하고 있는 하나의 기획을 두고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왔다.


 솔직한 심정으론 같은 직원인 편을 들고 싶었지만 팀장님 의견에도 신중하고 싶었다. 왜냐면 아무리 회식이어도 엄연히 업무의 연장인 이곳에서 눈밖에 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 자리를 보존하고 될 수 있다면 진급의 기회도 노리고 싶었던 속셈이다.


 하지만 나는 팀장님을 배반했다. 동료가 느꼈을 업무의 부담감과 부당함을 천천히 말했고 리더로서 팀장님이 이 기획을 잘 고려해주시길 설명했다. 약간은 다들 취했던 분위기라 나의 의견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상사보다 동료의 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공공의 적은 남은 사람들을 합심하게 만드니까. 결국 우리는 상사의 말을 기어코 거역할 수 없으니 의도야 어찌 됐든 직원끼리 서로 처지를 위로하며 일을 성사시키는 게 중요하다 믿었다.

침묵은 균형을 이룬다


 유독 말이 많았던 회식의 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행여 내가 말실수 한 부분은 없는지 곱씹어 보았다. 적정한 거리를 잘 유지했을까. 선을 넘은 부분이 있진 않았나. 그 진심은 농담으로 들렸어야 할 텐데 등등


 다시 회사에 몸담으면서 결심한  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조용히 나를 지키겠다는 .


 타인에게 감정 이입을 잘하고 욕심도 많아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 애썼던 지난 사회생활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주고 믿었던 동료도 그만두면 섭섭할 정도로 남이었고, 다들 내 마음과 같지 않게 불같이 화를 냈다 쿨하게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나는 그런 면들이 너무 어색하고 어려워 혼자 속상했던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 필요했던 것이 ‘거리감’이었다.


 사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적인 유대감을 나눌 것. 이렇게 쓰고도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침묵을 존중하자는 다짐이다. 어색하고 불편하단 이유로 또는 너무 편하단 생각에 말이 많아지고 점점 선을 넘는 말들 때문에 오해가 생긴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특히 위치가 중간에 끼어 있을 때 침묵은 더없이 유용하다. 양쪽에 거리를 두고 균형 있는 질서를 만든다. 한쪽이 상대에 투덜거려도 적당한 반응만, 가타부타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그 말을 옮기지도 않는다. 내 선에서 흘려버리기. 그러나 가끔 직접 전하지 못한 상대의 칭찬은 나중에라도 반드시 얘기해 준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 하나는 뒷담화가 사람들을 한 순간에 자기편으로 묶을지라도 그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진 못한다는 것이다. 착한 이야기가 재미는 없어도 상대를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결국  곁에 좋은 사람을 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나는 오늘도 시소가 번갈아 올라가며 재밌게 탈 수 있도록 가운데서 균형을 잘 맞추었는가. 혹여 동료들에게 의식 없이 꼰대처럼 굴진 않았을까.


 있는 동안만큼 나는 이 조직에 있는 한 구성원들의 갈등을 좋은 에너지로 바꿔 성장하고 싶다. 후배로서 좋은 결과의 데이터를 든든히 마련하고 선배로서 유연한 자세를 갖춰 본다.


 이제 몇 년 후면 2000년생이 사회에 진출한다던데. 나는 얼마나 더 어려운 선배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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