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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Feb 17. 2020

아이유가 좋은 말을 했다.

좋은 글을 만나는 그녀들의 인터뷰

 좋은 문장은 대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가 많다.

스치며 말했던 누군가의 짧은 감탄사가 그렇기도 하고, 농담 삼아 엄마가 말했던 한 말이 종일 내 가슴을 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을 더 좋아하고 잘 맞는 편이기도 하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투, 단어, 뉘앙스에서 성격이 드러나고 나아가 그들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나와 상대가 오랫동안 함께 걸을 수 있냐 없냐의 기준이 되기도 하여 귀중한 탐색의 시간도 된다.


 이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한 다른 면을 보게 해 준다. 이를테면 그저 이쁘고 노래 잘하는 아이유를 의외로 단단한 사람이라고 보게 해주는 일처럼.


"10년 간 활동하고 이런저런 평가를 받으면서 느낀 건 내 논리가 분명하면 어떤 평가를 받아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영화 역시 이런 배우가 되어야지,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감각적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고, 하고 싶은 끌림이 있는 배역이라면 도전하고 싶습니다."

(씨네 21 아이유 인터뷰, 페르소나 영화 중)


 아이유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지만 연기는 잘 모르겠는, 방송 몇몇에서 나온 걸 봤을 때 그다지 애교를 잘 떠는 성격은 아니고 무덤덤하면서 담대한 모습이 있을 것 같다는 정도였다. 똑 부러진다는 이미지보단 성실하게 본인이 원하는 걸 밀고 나가는 느낌 말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된 건 효리네 민박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신중하게 읽고 있던 얼굴이었다. 어린 연예인이 고전문학을 읽고 있어 낯설었는데 싱어송라이터로서 능력을 갖춘 이유가 독서였겠거니 싶었다.


 아이유의 인터뷰는 나의 20대를 떠올리게 했다.

부침이 많은 연예계에서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해 정점을 찍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경험 폭도 훨씬 크고 이런저런 안 좋은 일도 많이 겪었을 터였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이 짧은 건 아니니, 그녀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논리적일까?

논리라는 것이 애당초 뭘까?

주장, 의견, 고집과는 성격이 다른,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경험에 의해 성실히 만들어진 나만의 데이터?


 이 모든 걸 포함한다면 아이유가 말한 '내 논리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분명하면'에 초점이 더 맞춰져야 할 것 같고.


 의외로 사람은 성격과 고집만 세고 이성과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만 해도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같은 이중적인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려 들고 이득을 본다 싶으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일지라도 합리적 근거를 내세워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고집 말고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본인이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경험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타인의 질투, 의심, 악의적인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격지심이 큰 시기일수록 촘촘한 계획과 성실한 발자국을 많이 남겨 놓아야 한다. 그것이 보잘것이 있든 없든, 필요하면 계속 연습하고 도전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몸에 새기는 일은 '나의 논리'를 견고히 다지는 시간이 된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 일하는 마음 중)


 3년 여의 살림하는 시간을 통과해 그 속에서 얻은 마음가짐과 태도의 파편들로 현재의 직장 생활을 꾸리고 있다.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일들과 시간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영감과 참을성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그때 새긴 태도를 기준으로 '일'과 '사람'에 사적인 감정을 쏟지 않게 노력한다.

또한 이런 감각은 친한 친구가 전업주부를 비하하는 말을 내뱉거나 무시할 때 욱하는 성질 없이 담대하게 넘어가는 기질을 발휘해 주었다. 자격지심에 굴복하지 않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 벽돌집 안에서 나의 가능성을 지켜낸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내가 만들어 온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뭐라도 하고 있는 지금의 노력에 기대 보면서 미래를 나쁘게 점치지 않는 것이다.


 서른이 다섯이 돼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고, 더 이상 직업이 나를 대변하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는 더욱 창조적이며 고유한 나의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바텐더일 수도.

평일엔 헬스 트레이너, 주말엔 시인일 수도.

23시간은 엄마, 1시간 동안은 예술가일 수도.


 타인의 쓸데없는 오지랖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에 경계를 두지 않고 ‘할만하겠다 싶은 일’을 해보는 시간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하루하루 내가 뭘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만들어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양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하면서 내 논리가 허술하고 빈약해 보이고 완벽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함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점이 상대의 비난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해 나를 재차 견고하게 만들어 갈 여지를 준다. 어차피 우린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좋든 싫든 옆 사람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므로, 기왕이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 타인은 반드시 필요할 테니. 반복적인 일상 수련을 통해 분명한 내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낼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인터뷰 기사가 많은 잡지는 역시 미용실에서 봐야 제맛이라서 나는 꼭 잡지 두 권을 갖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동안 관심 두지 않았던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신중하게 읽고 새로운 인물을 발견한다. 편집자가 선택하는 이상 온전히 인터뷰어를 신뢰하긴 어렵지만 단 한 문장이라도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성이 보인다면 한 사람의 작은 세계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게 온 좋은 감각으로 흡수한다.

그런 의미로 이번 달에도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


Q. 김서형은 어떤 어른이고 싶나요?

완성은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것, 믿는 것들에 성실할 뿐이에요.

(배우 김서형 인터뷰 )


 주어진 것과 믿는 것들에 성실할 뿐이라니.   문장만 가지고도 그녀가 여태 어떻게  자리에 올라왔는지   같은 느낌이다.


 과연 나는 오늘 무엇에 성실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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