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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pr 13. 2021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허리 통증으로 근 두 달간 앉지도, 허리를 구부리지도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우울했다. 일주일이면 나을 줄 알았던 디스크는 그동안 더 늙었는지 끈덕지게 나를 못살게 굴었고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치료가 너무 더뎌 늘 마음이 조급한 데다 퇴근 후 집안일까지 하는 신랑에게도 미안함을 전해야만 하는 생활.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혹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스러운 맘에 잠도 잘 못 자는 날들이었다.


정말이지 지지난주까지는 마음이 너무도 우울하여 글 한 줄을 쉽게 쓰지 못했던 날들을 보냈다.


신경외과와 한방병원을 거치며 지금은 침과 도수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나름 두 달간 이런 생활을 해오니 그동안 잊고 있던 건강의 중요성을 바위에 새기듯 매일 기도처럼 외운다.


다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아프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추구해온 우선순위가 뒤바뀌면서 뭔가가 슬그머니 정리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몸이 아프니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멈춤이다.


그동안 쉽게 하던 것들을 당연하게도 못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누워서 휴대폰 하기였다. 허리가 아프니 손으로 휴대폰 들 때도 욱신욱신 거려 옆으로 누워 유튜브나 봐야 했고, 책 읽는 것도 사치, 글 쓰는 일은 더더욱 못 할 일이 되어 버렸다. 일단 힘이 없으니 늘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들은 내 삶에 작은 균열을 가져왔다.


그동안 내가 믿었던 have to do list가 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걸 알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기, 매일 환기시키기, 한 달에 한 번 꽃에 물 주기, 때 되면 꽃 사서 집 꾸미기,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하기 등등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절대 안 될 것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지금은 언제 가능할지 모를 저 먼 시기로 밀려 버렸고, 계획이라고 부른 모든 리스트는 내 몸 컨디션에 따라 쓸모없는 것들이 되었다. 만기가 다 된 여권 신청도 일단 내가 온전히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때 사진을 찍고 나서야 시청에 갈 힘이 생기면 할 수 있는 계획으로 밀려났고 봄꽃 놀이도 그저 차에 앉아 의자 시트를 뒤로 젖혀 창문 너머로 슬쩍 보거나 집 앞 주차장에 피어 있는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동안 봄이 되면 하려고 벼렸던 서재 꾸미기, 이불 빨래, 꽃꽂이, 국내여행 계획도 모두 신기루처럼 다 사라졌다. (땅바닥에 떨어진 양말 하나 줍지 못하는 처지이니 말 다했지..)


그동안 나는 무얼 좇으며 살았던 걸까.


늘 되는 일이 없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막상 몸을 마음대로 못 쓰는 상황이 되자 여태까지 나의 삶은 참으로 무탈했음을. 하고자 하는 일은 해볼 만한 가능성이 있었고 무겁고 복잡한 마음도 어느 정도 통제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몸이 아프고 보니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어쩌지 못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함을 깨달았다.


글도 쓰고 봄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나가고 싶은데 나는 아직도 거실 겨울 이불 위에 누워 리모컨이나 돌리며 드라마를 보면서 허리에 적외선을 쬐고 있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이와중에도 설레는 시간이 생겨버렸다는 건, 역시 삶은 뜻하지 않는 선물을 숨겨 놓는 걸까.


휴대폰도 책도 못 읽는 상황이 되면서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시간을 너무도 기다리고 있는 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출근하는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다.


건강할 때는 늘 퇴근하고 나서 뭘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밥 먹고, 책 좀 읽고, 인스타도 좀 하다가 글감도 모으고 블로그 포스팅 목록까지 짜면 하루를 옹골차게 맺는 느낌이 좋았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내는 일이 내게도 좋다고 믿었다.


단순하게 살고자 해 놓고 막상 나의 삶은 복잡하고 바빠야 잘 살고 있는 기분이 든 최근. 변화가 필요하다 싶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몸이 내 생각을 정지시켜 버렸다.


지금은 퇴근하고 간단하게 밥을 먹고(거의 일어서서 먹는 수준), 소화 좀 시켰다가(바로 누우면 급체로 또 다른 지옥을 맛봄), 약 먹고 옆으로 누워 적외선 조사기에 허리를 갖다 대면 뜨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때 보는 드라마가 아주 아주 꿀맛!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고, 하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으며, 나중에 하겠다는 계획도 하지 않는다. 월/화엔 나빌레라를 보면서, 수/목은 넷플렉스를 보면서, 금/토는 팬트하우스를 보며 적외선을 쬐는 2시간이 하루에 맛보는 절정의 순간이다.(펜하 시즌3 언제 하니) 정말이지 다른 건 다 필요 없이 드라마 보는 시간만이 내가 통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기쁨이자 전부인 것만 같다.


이 얼마나 단순한 생활인지. 뭔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도 목적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24시간의 단 2시간을 순수한 기쁨과 희망으로 보내고 있다.

 


허리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오랠수록 그동안 이어온 나의 초조함과 욕심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통증에 정직하게 반응하며 사는 요즘에 들어서야 내가 여태껏 쥐고 흔들던 모든 것들이 모두 내가 만든 욕망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가령 브런치 라이킷, 포스팅 조회수 등등의 숫자로 이뤄진 이 몹쓸 세계들)

이 희미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는데..


사실 별 게 없었던 거잖아?


아파서 아무것도 못해도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갔고, 나도 아무 일 없이 살았다....



환자가 되어보니 세상이 참 불편하게 만들어진 것도 보였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왜 이렇게 멀고, 신호 시간은 왜 이리 짧고 높은 턱은 왜 길거리에 많은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도대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또 자신의 병마와 싸우며 책을 쓴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펜을 든 건지. 나는 그 책을 감히 얼마나 후루룩 쉽게 읽었던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씩 자리에 누웠다 숨을 고르고 괜찮아진 것 같으면 다시 일어나 키보드를 두드린다. 고통의 리듬에 따라 무언가를 조금씩 시작해 보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거나 일어서서 책 몇 페이지를 읽거나, 다림질을 해보는 등등


오랜 통증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허리 때문에 너무도 우울하고 일희일비했던 한 달을 애써 지우고 이제는 좋아지고 있다고 믿으며 우위로 두었던 마음치유를 내려놓고 몸 치유에 초첨을 맞춘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하던 일을 바로 놓고 눕는다. 하고 싶지만 몸이 안 된다고 하면 마음도 바로 수긍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 저절로 욕심이 떠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이제 내게 설득될 수 없다. 마음을 아주 세게 먹어도 몸이 안 따라주면 에브리띵 이즈 낫띵!


모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 모든 일이 되려면 재능도, 꾸준함도 아닌 건강이다. 물론 신체의 어려움을 딛고 본인의 예술성을 꽃피우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까지 되기 위해선 고독하고 어두운 시간을 몇 겹씩 몸에 둘러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시기 없이 우리의 정신은 정상이라고 부르는 신체의 평균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몸으로 체득한다.



본의 아니게 멈춤의 시간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렴풋하게 느낀 감정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다. 언제쯤 의자에 편하게 앉아 글을 써볼까 잠시 기대도 해 보았지만 얼른 고개를 젓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통증 없이 이렇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고.


몸이 보내는 통증에 웃고 울고 할 시간에 약 잘 먹고, 치료 꾸준히 받고, 많이 걷고, 일하고, 기도하자고.

내 욕심이 몸이 허락하는 선을 넘지 않도록.


몸이 마음을 쉬게 하는 이 시간을 받아들이자고.

매일 되뇌고 있다.



오늘 밤 허리에 적외선 쬐며 보는 나빌레라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출근길에 요즘 나의 근황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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