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거 한 거 아니야?”
“나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래?
오랜만에 남편과 싸웠다. 살면서 누구와 이런 말다툼을 하는 때가 별로 없었다. 그저 상대가 부당하다고 느끼거나 싫어지면 조용히 멀어졌고, 친구와 조금이라도 의가 상할라치면 애써 내 마음을 누르는 쪽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니 나의 진정한 첫 싸움 상대가 연인이자 남편이 되었다.
연애 때는 잘 싸워본 적이 없다. 여기서 ‘잘’이라는 건 현명함과 가까운 의미로 내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언쟁을 시작해 결국 막장까지 가서야 이제 화해할 때라고 느끼는, 정말 싸움을 못하는 축에 속했다. 나는 정말 이게 싸움의 정석이라고 믿었고 또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감정을 푸는 게 옳은 줄 알고 상대가 삐치면 체력과 시간을 들여가며 그 자리에서 풀려고 했다. 분명 상대가 먼저 잘못했더라도 내가 먼저 사과해서 빨리 끝내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과 화해의 유형도 사람마다 달라서 나는 웬만하면 당일 풀고 기분 좋게 헤어졌으면 하는데 남편은 감정을 해소할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답답한 쪽은 늘 나, 조급한 것도 나였다. 빨리 화해하고 깔끔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되면 사생활에 지장이 컸다. 회사에서도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고 일도 손에 잘 안 잡히는 유형이었던 거다. 연애뿐 아니라 다른 생활 영역에서도 어떤 걱정이 생기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연애를 하면서 동시에 언제든 이별을 할 수 있단 생각 때문에 자꾸 화난 상대를 확인하려 했던 것도 같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의 끝엔 ‘우리 그만 헤어지자’가 세트로 나오니까. 그 결말이 싫어서 가급적 상한 감정을 그 자리에서 풀고 싶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건 절대 ‘잘’ 싸우는 기술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싸움의 기술 따윈 모르지만 이제 조금 깨달은 건 아무리 남편을 닦달한다 한들 내게도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상하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싸우는 일이 체력소모에 가깝고 내 감정과 생활을 미운 사람에게 쏟는 게 어리게만 느껴졌다. 남편의 잘못만 생각하느라 씩씩거리는 분한 마음의 크기를 내가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화나고 어이없는 순간을 다른 일로 대체해 버리는 게 상대나 나에게 훨씬 효율적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다니.
언제였던가, 당근을 썰다 남편하고 싸워 한참 풀어주려 하다가 에잇 모르겠다 하고 방에서 나와 썬 당근을 접시에 담고 양파를 꺼내 채소 볶음을 마저 만들었다. 불 세기에 집중해가며 돌솥밥도 짓고 중간중간 설거지도 하면서 일단 내가 하던 일은 끝낸다는 마음과 애써 싸움의 이유를 곱씹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접시도 정리하고 행주도 빨아 널면서 오르락 내리는 감정에 나를 맡기지 않고 잘 다독여가면서 일을 끝냈을 때, 그 개운한 기분이란.
아마 예전 같았으면 달래고 달래다가 내가 더 화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나 보면서 밥도 굶었을 거다. 불난 집에 부채질은 너와 나의 거리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이제 알아가고 있다.
아직도 인생에 대해 쥐뿔 모르고 욱하는 성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건 이런 순간들이 점점 늘어날 때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가까스로 이성을 선택한 시간에서, 그리고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무조건 피하지 않고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등 떠미는 나를 보았을 때 말이다.
그제도 다리가 후들거렸던 필라테스를 마치고 겨우 버스에 올라타 집에 와선 계란 하나를 삶아 놓고 씻고, 머리 말리고, 냉면 한 그릇을 만들어 야무지게 해치웠다. 그 와중에 영양을 고려한다고 친정 표 로메인 듬뿍, 골뱅이도 넣어가면서 삶고 자르고 비비는 일련의 과정을 해냈다. 여기서 기특한 포인트는 몸과 마음을 쭈뼛거리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 일을 했다는 거다. 컵라면 한 끼로 때울까 말까 한 그 귀찮은 시간을 일말의 고민 없이 스스로 잘해 먹겠다는 마음이 아주 부드럽게 행동으로 이어진 일이었다.
사실 좋은 어른이란 건 별게 없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사랑하면 당연히 주위를 배려하게 되면서 나와 상대의 거리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감이 생긴다. 이 감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존경하는 부모님, 함께 할 여러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게 하는 아주 쓸모 있는 감각이다.
그럼 도대체 스스로 사랑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보고 싶은 영화를 실컷 보는 시간을 갖거나 좋아하는 소품을 사기 위해 예쁜 인테리어샵을 검색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걸 추천한다. 어른이 되는 시간을 보내니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건 거창하고 추상적인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로 만들어진 하루를 사는 일 같다.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만드는 일쯤은 쉽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솝 룸 스프레이를 침대에 뿌려도 좋을 것 같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인쇄해서 책상 벽에 붙여두는 일. 아니면 엑셀 파일로 그동안 모은 자산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일도 좋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서는 웬만하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해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귀찮고 짜증 나서 자꾸 그 일을 스킵하면 결국 찝찝한 것도 나요, 더 성질나는 것도 나다. 10살 먹은 어린애가 아닌 이상 서른 살이나 넘게 나이를 먹었으면 어른답게 일처리 하는 법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본다. 자기 통제력을 기르지 못하면 성공은커녕 생활 유지도 못 한다. 운이 좋으면 가만히 있어도 다 도와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아무도 나에게 밥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내 힘으로 숟가락을 드는 것부터 생존의 시작이고 어른으로서의 첫걸음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결혼 후 내 살림을 꾸리고 나서야 몇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조금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아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 이상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어린 자식이 아니고, 이젠 내 자리가 부모님 뒤로 옮겨지는 때가 왔음을 안다. 엄마의 암 소식을 듣고 맨 처음 한 일은 유방암 치료 결과가 좋았던 병원을 찾아 예약했던 일이다. 부모님도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넋 놓고 울기만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약과 진료, 수술 일정까지 조율해가며 내 휴가를 뺐고 엄마가 마음 편하게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자주 전화하며 안심시켜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주로 아빠가 엄마 곁에서 간병을 하셨지만 엄마의 서브 보호자로서 보험과 암환자에게 주어지는 국가 혜택을 알아보고 요양병원 리스트를 만들어 예약해 드리는 게 어른 자식의 역할이었다.
아버님이 수술을 하셨을 땐 야밤에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신랑 편에 어머님께 전달했다. 아마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간단히 안부전화만 드렸을 내가 올해는 조금 더 큰 자식으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어머님이 며칠 동안 먹는 병원밥이 얼마나 맛있을까 하여 부랴부랴 반찬을 만들었더니 막상 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싶었다. 결혼 후 몇 동안 아내로서 성장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딸과 며느리, 부모님의 보호자로서 겪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았고 자식으로서 대접만 받으며 살고 싶은 욕심에 나이 서른을 먹고도 어린애처럼 굴었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 되는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를 겁내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필요를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볼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편견으로 구분 짓지 않는 유연성을 가져보기로 다짐해 본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더 작아졌지만 색은 더 진해진 기분이다. 모든 사람에게 얼렁뚱땅 좋은 사람이 되는 일보다 옆에 있는 내 사람들에게 확실히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좀 더 사랑한다고 말하겠노라고. 더 살뜰히 챙겨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