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와 똑같이 회사로 나온 회사원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회사마다 옷에 대한 규정은 제각각이다. 정장, 세미 정장, 포멀하면서도 캐주얼하게, 반대로 편하면서도 격식은 갖추어서, 깔끔하면서도 화려하게.
자유롭게 입으세요, 포멀한 착장이면 되겠군요, 정장에 넥타이는 필수고요, 건방지게 타이 커프는 삼가주시고요...... 그럴 바엔 유니폼을 맞춰주면 고민할 것도 없어서 편하겠는데 그런 회사는 또 좀체 없다. 교복처럼 '사복'을 만들어주면 회사도 좋고 나도 편하겠는데요, 춘추복, 동복도 나눠주시고요. 생산직에게 있는 작업복을 사무직에게도 도입해달라! 위아래 깔 맞춤이어도 좋고 아예 점프 슈트 같은 것도 편리할 것 같다. 뭐든 좋으니 어디 한번 '편하면서도 격식은 갖춘' 디자인을 내놓아보시죠.
우리 회사는 한없이 자유로운 복장 규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착장을 바꾸는 것은 계절에 따라서였다.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우리는 종종 뒤떨어지거나 너무 앞선 복장으로 길에 나서곤 한다. 군복을 입고 민방위 교육장에 들어선 민방위 1년 차처럼, 계절에 동떨어진 복장은 부끄럽고 민망하다. 어느 날 관성처럼 누빔 점퍼를 입고 출근을 한 나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날이 더워졌는데 나는 여전히 누빔으로 된 점퍼를 입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낀 하늘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태양이 누렇게 떠 있었다. 등과 겨드랑이 사이로 느껴지는 열기에 아차 싶었지만 별 수 없었다. 누빔으로 된 점퍼를 벗어도 기모로 된 맨투맨을 안에 입고 있었다. 추위를 유별나게 타는 나. 이제는 코로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길 위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밝은 색 청바지에 하얀 반팔 면 티를 입은 여자가 발랄한 몸짓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흘낏 쳐다보는 눈빛에서 경멸과 조소를 읽은 것도 같지만 아마 착각이었을 것이다.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 머물러 있었다. 날씨도 모르고 누빔으로 된 점퍼를 입은 멍청이를 비웃은 것은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와이셔츠를 입고 한 팔엔 재킷을 접어 걸친 회사원 둘도 지나갔다. 그들에게 정장 재킷은 더워도 마음대로 벗을 수 없는 족쇄 같은 것이리라. 비록 나는 족쇄도 뭣도 아니고 그저 나 스스로 누빔 점퍼 밑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지만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말해봐, 너희도 나만큼 덥고 괴롭니?
둘 중 하나가 나를 보며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니, 너랑은 입장이 달라도 한참은 다르단다. 남자의 두툼한 목살을 잡아 비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관두었다. 내가 선택한 고난의 길이었다. 비록 비틀기 좋은 목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은 점점 더 종횡무진이 되어가고 있었다. 봄과 가을은 통째로 환절기가 되어 여름에서 겨울로 다시 여름으로 변해가는 과정에만 잠시 위치했다. 계절은 노을이 길 위에 번져가듯이 눈 깜짝할 새에 바뀌었다. 그러니 둔감한 회사원은 누빔 점퍼를 입은 채 가엾은 모양으로 길 위에 내던져지고 마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이 누빔 점퍼부터 벗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손빨래는 할 수 없다니깐 드라이를 얌전하게 맡긴 후 돌아오는 대로 창고 속 가장 깊고 추운 곳에 처박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존재도 드러낼 수 없는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유배 확정. 나는 나의 멍에와 오욕을 씻을 것이다.
그때 내일 저녁부터 비가 내릴 예정이라는 예보가 들려왔다. 이틀 밤낮으로 비가 온 뒤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누빔 점퍼에 달린 로고 속 캥거루가 나를 보고 웃었다. 이건 비웃음이 맞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