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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Mar 06. 2019

'운전' - 「드라이브 어글리,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에 회사원은 핸들을 꽉 쥐었다 

  회사에 다녀서 좋은 점은 의외로 많다. 그중에 제일은 역시 돈을 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지갑 속 몇 장 없는 지폐를 없어 보이는 눈길로 힐끔거리지 않아도 되고 연인과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몰래 가격표를 훑지 않아도 된다. 비바, 돈 버는 회사원. 다시는 출근하기 싫다고 투덜대지 말아야지.

  

  학생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사는 일은 회사원만이 누릴 수 있는 쾌감이다. 내게는 그것이 차였다. 차를 샀을 때 비로소 나는 사회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확신했다. 비록 기약 없는 할부를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부어야 하지만, 거대 자동차 기업과 신용 거래를 트는 것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사실 운전면허를 딴 것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였다. 면허를 따도 앞으로 10년은 핸들도 만져볼 수 없을 것이란 암울한 미래를 그때는 몰랐다. 차를 산 것은 겨우 1년하고도 반년 전의 일이다. 초보 딱지를 뗀 것은 1년 전이고 깜빡이도 없이 위협적으로 끼어드는 운전사들에게 나름의 방법으로 보복할 수 있게 된 것은 반년 전부터다.

  

  나의 운전은 아버지를 닮았다. 도로 위의 모든 차량을 불신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운전을 그에게서 배웠다. 정식으로 부자간의 운전 연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옆 좌석에서 눈과 몸으로 하나하나 체감하고 습득했다. 도로를 나갈 때의 마음가짐, 차선을 이동할 때 점검해야 할 사항들, 도로 위의 정상이 아닌 것들을 구별하는 법과 정상인 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들.

  

  이제는 보조석 대신 운전석에 앉아 아침 출근길마다 운전을 하며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드라이브 어글리. 평온한 나의 마음에 분노의 싹을 틔워준 것 중 8할은 도로에서 만나는 다양한 운전수들이었다.




  드라이브 어글리,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40분의 출근 시간. 아주 짧은 거리,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운전해서 사무실로 오지만, 그 순간에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흰색과 회색에 대한 맹목적이고 단조로운 색깔 취향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아주 제각각이다. 출근길 위 구분하기 힘든 백색의 차들이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운전자의 개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주 해선 안 되는 사이

  

  아파트를 빠져나와 집 앞 초등학교를 지난다. 길 위에 뉘어진 일방통행 글자를 지나자마자 반대편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를 마주했다. 미세먼지로 가시거리가 짧아서인지 전조등을 켠 채였다. 나와 그는 일방통행 글자 위에서 잠시 반목한다. 클랙슨을 울려볼까, 핸들 위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그가 조용히 차를 벽으로 가까이 붙여 댔다. 아까의 침묵은 잠시 잘잘못을 따져보는 순간이었나 보다. 손을 들어 인사하고 그를 지나친다. 짙게 선탠을 한 그 차의 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내게 인사를 해줬을까?

  


  불법 비둘기 떼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든다. 오늘은 좌우의 통행이 많지 않다. 럭키. 핸들을 꺾어 길가로 나오자마자 동네 마트 앞으로 길게 도열한 주정차 차량들을 만났다. 왕복 2차선 도로에 왕복 두 줄의 차들이 늘어섰다. 아침부터 마트는 북적였다. 손님들의 불법 주정차가 고스란히 마트의 수입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택시도 난감한 듯 비상등을 켰다. 그에게 손을 들어 먼저 지나갈 것을 권했다. 조심스레 그가 지나는 것을 기다리며 주정차한 차들을 보고 전깃줄에 길게 늘어앉은 비둘기 떼를 떠올렸다. 비둘기 떼는 평화롭다. 그들도 평화롭다. 그 주변을 지나야 하는 사람들만이 혹시나 떨어질지 모르는 불운에 움츠러들 뿐이다.

  


  도로 위 여포

  

  사무실까지 거의 직선의 대로를 따라 달린다. 길은 텅텅 비거나 꽉꽉 막힐 때도 있다. 구간마다 늘어선 신호등들은 정중한 태도로 파란빛을 내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직된 붉은 얼굴로 좀 달려보려는 차들을 멈춰 세운다. 가끔은 신호등의 변덕에 그날의 운세를 맞춰보기도 한다. 그러나 변함없이 일관되게 길 위를 지키는 것이 있으니 차선을 물고 가는 택시들이다.

  

  꽁무니에서 하얀 분뇨를 점점이 뱉어내듯이 택시들은 하나같이 차선을 물고 달렸다. 기껏해야 중형 세단 정도의 체구로 차선 두 개를 제 것인 양 차지했다. 은백색이 되었든 감귤 색이 되었든 'TAXI'라는 마크가 면죄부라도 되는 듯 길 위에서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내 앞을 달리는 탁한 잿빛의 택시는 '근조(謹弔)'라고 쓰인 까만 띠를 시체가 빼어 문 혀처럼 트렁크 밖으로 내밀었다. 깜빡이 없이 왼쪽에서 끼어든 그는 謹弔를 바람에 휘날리며 깜빡이 없이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그들의 근조는 아마 삶의 터전에 침입한 외부 영업자에 대한 것일 텐데 그들은 정작 내 삶의 안전거리 안으로 깜빡이도 없이 마구 끼어들었다.  

  


  어느덧 차는 한강 다리를 지나 사무실 뒷골목에 접어든다. 익숙한 이름의 빌딩 주차장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힘든 길을 지나온 차를 하나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차장은 출근길을 헤치고 당도한 용사들로 가득 차서 뜨문뜨문 몇 개의 자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9시. 모두 각각의 사무실로 뛰어올라간 그 시간, 남겨진 차들은 고단한 몸을 우레탄 바닥에 뉜 채 나직이 한숨 쉬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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