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이를 아직 가지 못한 회사원은 날씨에 집작하기 시작했다
여기 금요일 퇴근을 한 시간 앞둔 회사원이 있다. 연차도 반차도 없이 정규 근무시간을 풀로 채워 일한 그. 퀭한 눈과 떡진 머리가 그간의 고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입가엔 한줄기 미소가 머물고 있으니 이제 곧 주말이기 때문이었다. 주말. 듣기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그 이름, 주말. 정작 그날이 되고 나면 딱히 별 볼일 없으리란 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했음에도 미지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그 이름, 주말. 주말을 앞둔 것만으로도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아 남자는 미소 짓는다.
그때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심코 확인한 날씨 어플에서 비의 가능성을 보았다. 어플은 주말 내내 비가 올지 모르겠다고 구름 밑에 땡땡 비 내리는 아이콘을 띄워놓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포털 사이트 주소를 친다. 네이버가 아니라면 다음, 다음도 아니면 구글로. 남자의 마음은 초조하다.
회사원에게 주말은 5일보다 열 배는 중요한 이틀이다. 우리가 월요일을 열고 화요일을 견디고 수요일을 참고 목요일을 행군하여 금요일까지 버티는 것은 오직 주말이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듣기만 해도 찬란한 그 이름이여. 그런 주말에 비가 온다는 것은 신앙심으로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핸드폰에 날씨 어플을 4개나 깔아놓은 것은 확률로 날씨를 점쳐보려는 발버둥이었다.
늦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을 한 몸에 받으면서 기쁨과 초조함을 동시에 느꼈다. 가슴 벅찬 흥분과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조급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봄! 아주 짧게 머물다 지나갈 봄의 날들! 늦기 전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살갗 위에 곤두선 털들로 노란빛이 듬뿍 쏟아졌다. 팔과 목덜미 위에도 열기가 피어올랐다. 봄의 열기를 받으며 피부가 팽창하는 듯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순도 100%의 쾌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이러니 다급하지 않을 수가! 봄의 끝이 멀지 않아 보였다.
서둘러 폰을 열고 날씨 어플을 켰다. 깜깜한 화면에 노랗고 둥그런 해 모양 아이콘이 떠올랐다. 하나, 둘, 셋, 넷, ... 좋다. 주말까지 안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노란색 동그라미에 주황색 실선이 소용돌이치듯 새겨져 있었다. 그냥 맑은 것도 아니고 몹시 화창할 것이라는 표시다. 두근거림이 더해진다. 하지만 안도하기엔 일렀다. 이 작은 어플에 얼마나 많은 배신을 당했던가.
맑은 하늘에 혹해 나왔다가 갑작스러운 비에 오도 가도 못했던 일이 생각났다. 반대로 오전, 오후 모두에 새겨진 비구름 아이콘을 보고 들고 나온 우산이 애물단지가 된 경험도 얼마나 많았던지. 이놈은 확실하게 장담할 때일수록 거나하게 뒤통수를 때리는 경향이 있었다. 크로스 체크를 해야 했다. 주말까지 밝은 하늘을 약속해 줄 더 굳건한 신뢰의 근거가 필요했다.
뉴스를 확인했다. 포털의 뉴스 탭에서 정확도와 최신순에 체크 표시를 하고 날씨를 검색했다. 어차피 소스는 하나일 텐데도 수십 개의 예보가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과학적 관찰에 근거한 예보일 텐데 마치 예술 평론이라도 하는 양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오늘 하루 맑을 것이라고 활짝 웃는 얼굴로 전하는 여자 캐스터 밑으로 지역에 따라 빗방울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뉴스가 이어졌다. 남색 스커트를 입은 캐스터는 빗방울을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리 애도라도 하는 것인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그렇게 큰일은 아닐텐데요오.
모르시는 말씀. 비에 홀딱 젖어봐야 당신의 불운에 울상 지으시려나.
날씨에 대한 다채로운 견해만 확인했을 뿐 주말 날씨에 대한 크로스체크는 할 수 없었다. 주말까지 화창할 것이라는 기사가 과반수였지만 - 남색 스커트의 그녀는 주말에도 역시 비가 올 것이라며 주름진 미간을 더욱 찌푸렸지만 - 확신을 주는 뉴스는 없었다.
날씨는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겠지만 분명 핸드폰 어플은 아니었다. 날씨는 아마 하늘에 있다. 날씨는 시간축 저 너머에 있다. 시간축이 제 시각에 닿았을 그날의 하늘에 있다. 비를 뿌릴 가능성은 구름의 질에 있고 나들이하기 적당한 쾌적함인지는 구름의 양에 있다. 그날 하늘을 구성할 모든 대기 요소의 양상 위에 주말의 날씨가 있다.
우리는 날씨를 예상할 뿐 진실엔 결코 닿을 수 없고 가늠하지 못한 날씨는 그날 사실로서 우리 앞에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핸드폰 어플에 일희일비하는 일은 관두어야 했다. 그것엔 날씨의 가능성조차 담기지 않을 것이기에.
이윽고 해가 졌다. 구름도 뚫을 듯이 선명한 빛을 뿜어대던 해도 시간이 지나자 못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더니 순식간에 서쪽 빌딩 너머로 넘어가버렸다. 해는 곧장 다른 지역에 얼굴을 드러내어 아침을 열 테지만 그때까지 여기는 밤이었다. 해가 진 방향에서 서늘한 표정의 달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썹 같은 초승달이었다.
몸을 따뜻하게 데우던 열기는 온 데 간데없고 환절기 저녁 다운 추위가 옷 틈으로 스며들었다. 손이 추워서 주머니에 넣고 싶었는데 봄 재킷엔 주머니가 막혀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양손을 마주한 채 입김을 불며 집으로 향했다. 구름이 얼마 없어서 밤하늘이 맑았다. 그렇다고 별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문득 달무리가 지면 다음 날 비가 올 것이란 말이 생각났다. 달무리란 구름에 달빛이 산란하는 것이니 곧 비가 올 예고일 수밖에. 제법 논리적인 얘기가 아닌가. 고개를 들어 달을 찾았다. 스산한 바람이 얼굴 위로 불어 들었다. 주말까진 이틀이 남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