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하던 회사원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회사원이 회사를 가는 행위. 이것을 우리는 출근이라 부르고 몹시 혐오한다. 올챙이 적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개구리의 마인드다.
회사원이 되기 위해서 준비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오늘이 수요일인지 목요일인지 요일 개념도 모른 채 느지막이 눈을 뜨던 그 시절. 아침 버스를 타고 (누구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이들을 선망하던 시절 말이다. 나는 눈칫밥 먹던 집에서 탈출하여 '출근'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출근을 할 때마다 영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매출 상승과 비용 절감의 사명을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는 산업의 일꾼. 출근의 심리적 만족도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매일 하는 출근이 지겹다면 출근길을 바꿔보면 어떨까? 나는 종종 좀 멀리 돌아가더라도 매번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보거나 한두 정거장 앞서서 내려 걸어가곤 했다. (조금이라도 사무실에 닿는 시간을 늦춰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이었다) 매번 걸었던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해보는 것만으로도 출근길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카페가 있었구나! 이 골목의 식당은 부장이랑 마주칠 일이 없겠다.
고개를 숙이고 똑같은 길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날, 문득 다른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봄이 여름으로 바뀌는 날이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40분이 걸렸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오고 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떤 정취를 일으키기에는 주변 풍경들은 너무 낯이 익고 8, 90년대 유행했던 양식으로 (바로 그 회색 콘크리트로) 똑같이 세워놓은 건물들은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다. 출근길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작지만 아주 획기적인 변화가.
차가운 공기가 미세먼지를 밀어냈다. 사흘 내내 머리 위로 낯선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갓 뜯은 요구르트처럼 구름마저 맑은 색깔이었다. 북쪽의 대륙에서 내려온 공기일까?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차고 무거운 공기는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채 미세먼지가 밀려오는 것을 막았다. 미세먼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는 자명했다.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그분처럼 '외부 물질의 유입'으로 에둘러 표현되는 그곳이었다. 지금 그곳에는 100미터가 넘는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었다던데.
사무실 창밖으로 타워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옷장 깊이 넣어둔 코트를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 수고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코트가 뭐 대수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의 만족감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좋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빌어먹을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얼마나 좋은지."
"맞아요. 아유, 그것 참 빌어먹을 짓이었는데."
"그럼 어색하니까 이만 안녕히."
"네. 부디 짧게나마 맑은 공기 즐기시길."
벚꽃이 흐드러졌다. 어느덧, 아니 어느새. 미세먼지 속 꾹 다문 꽃눈을 보며 방심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나무는 인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추운 듯 바람에 앙상한 몸을 떨어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하얀 빛을 가지마다 뿜어내고 있었다. 출근길 도로 양옆으로 어느새 꽃을 피워낸 벚나무들이 뽐내는 표정으로 도열해있었다. 벚꽃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으로 차를 몰고 지나갔다. 다행히 제법 세찬 바람에도 벚꽃잎은 가지를 꼭 붙든 채 떨어지지 않았다.
벚꽃이 나오는 노래라도 틀어야 할 분위기였다. 내가 아는 건 딱 한 곡뿐이었고 카 스테레오에 연결된 MP3를 재생시켰다. 아주 익숙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벚꽃이 피어서 기쁘지만 아주 짧은 시간 피었다 갈 것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피었다 싶으면 곧장 지고 마는 모습을 매해 돌아오는 봄마다 보았으니까. 그렇게 꽃이 지고 나면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곱게 단장했던 출근길도 다시 생활에 찌든 창백한 표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꽃을 털어낸 가로수는 이제 파란 잎사귀로 바꿔달고 찌르는 듯 강렬한 햇빛을 받고 설 것이다.
봄의 벚꽃을 보며 나는 벌써부터 여름을 기다렸다. 여름 햇살을 받는 출근길은 조금은 생기 있는 표정을 지어줄지도 몰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