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어디선가 만날 그 순간
삶이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수다를 나누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생각해보니 그것을 내 인생에서 아주 강하게 느낀 사건이 유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전의 나는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던 류의 사람에 속했다. 그리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면 열심히 하지 않은 내 탓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어떤 면에서 참으로 단순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성과를 내고, 그런 과정 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내가 열심히 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취를 하는 듯 보이는 삶을 살다 보면, 이런 잘 자란 화초의 생이 실은 변수가 잘 통제되고 관리되는 온실 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거친 야생에서는 가끔 폭풍이 오기도 하고, 비가 안 오기도 하고, 쑥쑥 잘 자라보고 싶은 식물 입장에서는 참 식물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허다한데 말이다. 아마도 인생의 어떤 측면에서는 온실 속에서 자라고 있던 화초 같은 인생을 살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아기를 잃는 일이 그런 계기를 주었던 사건이었을 것 같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데 오히려 기술의 발달 탓에, 매일 초음파를 확인하며 태아의 심장이 서서히 느리게 뛰며 죽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훤히 보고 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의 처절한 무력함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은 그때부터 강해졌다. 그리고 어떤 결과이든 내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어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유산 이후 어쨌든 숨은 쉬며 살아는 있던 어느 날, 친한 동생과 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인생과 무력감에 대한 대화를 하다 마음에 이는 뜻밖의 작은 파동을 느꼈다.
언니, 결혼이 하고 싶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왜 이리 애를 써도 만나기가 힘드냐고.
난 이것도 노력했고 저것도 해봤는데 안돼.
왜 안되는 걸까. 왜..?
언니, 그러고 보니 나도 정말 무력하다!
어머 그러게? 정말 그러네!
삶이란 원래 모두에게 이런 것인 것을 못 보고 있었구나. 나의 상실만이 그렇게 무력감을 주는 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무언가를 삶 어딘가에서 만날 때, 우리는 저항을 하며 그건 내가 꿈꾸던 내 삶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기 싫다고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내 삶의 일부로 그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래?’라고 삶이 내게 말하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렇게 모두의 삶에 언젠가는 한번 이상은 죽어도 받아들이기 싫은 무언가가 찾아온다. 어쩌면 그것의 최고봉은 지금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을 스스로의 죽음 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결국 이런 말을 토해내게 된다.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이건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구나.
누구에게나 다가올, 내 뜻대로 안 되는 그 순간. 차이라면 그것을 언제 어디서 만나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그 영역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느냐의 차이일지도. 그 차이가 그런 무력감과의 만남 이후의 삶을 각기 다르게 이끌어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