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찾아온 두 번째 유산
두 번째 임신과 계류유산 과정을 적었던 일기를
바탕으로 하는 기록
2월 6일
오늘은 임신 5주 6일째. 주말에 약간의 출혈이 있던 것 때문에 확인 차 병원에 갔다. 아기집은 1.05cm로 커졌는데, 이 시기에 난황도 같이 보여야 하는데 텅 비어 있었다. 출혈보다 선생님은 그게 더 걱정이신 듯했다. 나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1cm 정도의 아기집 크기라면 보통 난황이 보인다고들 하는 것 같은데, 걱정이 되었다.
6일 뒤에 다시 병원에서 볼 때는 심장소리도 듣고 난황도 다 보여야 한다시며 성장이 조금씩 늦는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그때까지 안정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어서 몹시 불안하다. 마음 다잡기가 이리 어렵구나. 프로게스테론 주사도 출혈 방지용으로 맞았다.
2월 11일
병원에서 난황을 확인했다. 주수보다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다고 선생님은 자꾸 걱정을 하셔서 신경이 쓰인다. 심장소리는 아직 못 들었고, 다음번에 듣기로 했다.
튼튼아, 잘 크고 있지? 화이팅!!
2월 15일
우여곡절 끝에 퇴근하고 병원에 가서 튼튼이를 보았다. 105 bpm 심박수에 0.4cm 정도의 몸 크기를 가지고 잘 크고 있었다. 콩닥콩닥 뛰는 모습이 귀여웠고, 심박도 잘 나와서 흐뭇했다.
2월 24일 오전
꿈을 꿨는데 배가 핑크색인 하얀색 뱀이 방에 들어왔는데, 배가 황토색인 검은 뱀이 나중에 들어오는 듯 했다. 꿈속에서 나는 검은 뱀에게 물리지 않게 적당히 방에서 피했다. 백사가 꿈에 나오면 길몽이라는데, 태몽인가 싶고 신기했다.
2월 24일 밤
퇴근을 좀 일찍 하고 병원 진찰을 갔는데, 튼튼이의 심장이 안 뛴다고 했다. 심장이 안 뛴지는 적어도 1주일은 되었을 것 같다고, 지난번에 병원에 방문해서 심장 소리를 들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멈췄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검진 이후 태아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나는 1주일이나 튼튼이의 심장이 멈춘지도 모르고, 웃고, 회사를 다니고, 이번엔 심장소리에 이상이 없었다고 좋아했던 것일까. 충격에 다른 병원도 바로 가봤지만 같은 결과였다.
눈물만 났다. 왜 나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오늘 꾼 꿈에서 검은 뱀이 안 좋은 의미였나...
2월 25일 토요일 그리고 26일 일요일
울고. 울고. 슬픔이 가득했던 주말.
(제정신이 아니어서 위의 문장 이외에는 아무 글도 적지 못했다)
2월 27일 월요일
많은 고민을 하다가 월화 동안은 일단 자연배출을 기다리며 회사에 출근을 하기로 했다. 수요일은 삼일절이니, 그때까지 배출이 진행되지 않으면 목요일부터 휴가를 내고 배출을 위해 병원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뱃속에는 심장을 멈춘 태아가 있었고, 나는 그 상태로 이틀간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귀하고 사랑스럽던 태아가 이제는 몸에서 자연적으로 나가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인생의 아이러니함은 이렇게 잔인할 때가 있다. 평소와 같이 겉으로는 차분하게 일을 했고, 주위에도 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계류유산은 임신 중 태아가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심정지하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태아가 자연스레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남아있는 상태를 뜻한다. 계류 유산된 태아가 자연히 몸 밖으로 배출되는 자연유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몸에 머물러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며칠 기다려보다가 소파수술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팀장님에게 일하다가 나의 심정이 담긴 한 마디의 말을 이렇게 했던 것 같다.
‘여기서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뭘 하긴, 돈 벌고 있지...’
어딘가 아픈 말이었지만, 슬프게도 그처럼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한 말을 달리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이틀간 묵묵히 회사에서 돈을 벌었다.
그 뒤 나는 3월 2일 목요일에 강남성모병원으로 가서 약물 배출을 진행했다. 임신 9주 차 정도의 시기였다.
계류 유산된 태아를 배출하는 방법으로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방법은 소파수술을 진행하는 것이지만, 나는 첫 번째 유산도 자연유산이었던 지라 소파수술의 경험이 없었고,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무척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 끝에 약물을 삽입해서 진통하듯이 태아를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강남 성모병원에 가면 그 방법이 가능하다는 누군가의 경험담을 보고 이 방법을 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볼 때 어느 방법이 나에게 더 나았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소파수술은 마취에서 깨어나서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배출 자체가 그렇게 고통인 것은 아닌데, 약물 배출 과정에서 시각적으로, 온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고통이 생각지 못하게 길고 컸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 내가 선택하고 싶었던 방법은 약물 배출이었다.
박인양 교수님 진료를 오후 3시 12분으로 예약을 했고, 40분 전에 도착했지만, 예진과 초음파 등을 거치니 실제로는 진료를 본 시간은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진료를 보니 박인양 교수님께 진료 보는 분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설명을 잘해주시고 환자와 잘 커뮤니케이션하시는 좋은 분으로 기억되었다.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계류유산을 확인해주셨고, 나는 약물 배출을 원해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출혈이 많을 수 있어 1일 입원을 해야 했고, 그 날 바로 입원을 원했는데 그 날의 병실 상황은 분만실 옆 병실 밖에 자리가 없어서 조심스레 괜찮을지 물어오셨다. 다른 임산부들은 출산을 하러 오는 병실인데, 이런 경우로 입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나도 평소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병실을 선택할 상황이 못되었고, 이미 태아의 심장이 멎은 지 시일이 흘렀기 때문에 몸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 좋지 않을 수 있어 바로 그 날 입원을 했다.
시술은 간단해서, 질정제로 싸이토텍을 4알 삽입을 하는데 이것부터 통증이 심했다. 싸이토텍은 원래 위장계통 약인데, 부작용인 자궁수축을 이용해서 계류 유산된 태아의 배출에 사용한다고 한다.
약을 넣고 반응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약기운 때문에 너무 추웠다. 그리고 8-9시쯤 진통하듯이 배가 아프면서 피가 쏟아졌고, 통증이 너무 심해 마약성 진통제 레벨을 올렸는데 그 탓에 구토가 나오고, 상황의 기억이 다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분만실 옆이라고 해서 걱정했더니, 죄송하게도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나였다. 토하고, 피를 쏟고,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기 직전이었다. 그리고는 레벨을 올린 진통제가 잘 듣는지 잠을 좀 잤고, 아침에도 눈 뜨자마자 피를 많이 쏟아내었다. 아침 일찍 초음파로 다시 확인하시고, 다 배출된 것 같다고 하셨다. 1주일 뒤에 외래를 통해 다시 확인하기로.
퇴원하고 신랑과 병원에서 나와서 근처 밥집으로 갔다.
온몸이 그저 텅 비어버린 것 같던 그 느낌을 따뜻한 밥 한그릇으로 채워보려고 했던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임신은 종결되었다.
글 제목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에 대하여 :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Mai piu cosi lontano는 예전에 일반인 남녀의 맞선 프로그램에서 많이 나와서 유명해진 그 노래. 가사는 잘 몰랐던 그 노래가 이상하게 두 번째 유산을 겪는 중 생각나서 집에서 울면서, 병원에 태아 배출을 위해 가는 길에 한참을 들었다. 제목의 뜻이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였다는 것도 한참을 듣다가 알았다. 이제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가끔 이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Time to say goodbye도 같이 번갈아 들었던 노래였다.
작별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을 알지만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싶었던 내 마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