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압박의 응어리를 풀어보다
어느 날 재빨리 집안일 한 개를 미리 하고선 신랑에게
‘나 빠릿빠릿하지?’ 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보던 신랑은 내가 내심 기대한 칭찬의 말은 해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칭찬을 기대했는가...?!)
빠릿빠릿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팍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고,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물었다.
‘그럼 나 느려 터져도 괜찮아?’
‘응 느려 터져도 괜찮아’
‘왜?’
‘여긴 집이잖아’
‘자기도 느리게 할 거야?’
‘난 느릴 땐 느리고 빠를 땐 빠를 거야.
늘 그렇게 빠르게 빠릿빠릿하지 않아도.. 괜찮아
집에서는 편안하게 있어도 돼.
여긴 집이잖아. 아무도 자기를 평가하지 않아’
그 즈음의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에 잠식되어있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던 대화였다. 곧바로 혹은 기한 내에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직원들과 윗선의 요구를 빠르게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그리고 속도뿐 아니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나는 짓눌려있었고, 무려 퇴사한 지 6개월이 된 시점의 대화였다는 것이 스스로 더 놀라웠다.
늘 빠릿빠릿할 필요도 없고 늘 느릴 필요도 없이 유연하게 조절이 되는 상태가 건강한 상태일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모든 압박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밖에서 온 것일까.
큰 위로가 되었던, 내 마음 구석에 뭉쳐있던 응어리를 풀어준 신랑의 말이었다.
그 뒤에도 습관적으로 꽤 많은 집안일들을 빠릿빠릿하게 해나갔지만, 또한 꽤 느리게 했던 부분도 많았음을 고백하며. (^^)
빠릿빠릿하지 않아도 돼요.
늘 빠르게 성과를 내고 성공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느릿느릿한 당신도 괜찮아요.
여기는 집이잖아요.
당신을 아무도 그런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