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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Jun 08. 2019

참으로 안쓰러운 나와의 불편한 만남

그들이 행한 일은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

1년 반 만에 갑자기 받은 문자였다. 다들 바쁘니 만나기는 어려워도 카톡안부는 주고 받는 것이 오히려 편리해진 이 세상에, 평소 연락을 그리 자주 주고 받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연락 온 용건에 대해, 참석하고 싶지만 당시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못갈 수도 있다는 답문을 보내니 이런 문자가 왔다.


 ‘넌 많이 안좋은거야?

30대 내내 아프면서 보내는 것 같아 안쓰럽네’


여러 맥락 상, 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당연히 와야지 그런 말을 하느냐는 듯한 가시가, 짧은 문장에서 느껴졌다. 몸이 안좋다는 내게 안부 전화가 온 것도 아니었다. 문자라 오해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전해진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놀라고 가시에 찔린 것 같은 내 느낌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어이가 없어 멍하게 있다가 눈물이 터졌다.




답은 당연히 보내지 못했다.

그 친구도 더이상 말이 없었다.

여기에 난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난 분명 30대 내내 아프지 않았고,

잘지낸 시간이 훨씬 많으며,

아팠을 때는 유산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그 말이 더 아팠다.


우리들은 그렇게 참 자주

다른 사람을 안쓰러워하고,

불쌍해하며,

그런 꼬리표를 붙이는 판단을 마음 속에서 내리곤 한다.






이런 나의 심정을 들은 다른 친구가 기운 내라며 이런 조언을 보내왔다.

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지만,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난 웃었고, 이 글을 신랑에게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나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되다. 그렇게 죽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렇다.”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토록 힘겨웠던 일을 끝내고 복된 쉼을 얻는다.
그들이 행한 일은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 모든 것으로 인해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


그들이 행한 일은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


나는 이 문장을 웃으며 읽기 시작했는데,

더듬더듬 펑펑 울며 마쳤다.


이 글의 앞뒤 맥락은 잘은 모르지만

그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친구는 이 글에 덧붙여 '여태 수고했고,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은 너의 마음이 씻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의 화는 무조건 옳다'며 공감을 해주었다.


같은 문자이고, 같은 카톡인데

대화의 온도는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그 친구의 다독임 뒤에야

그제서야 깨달은 나의 마음 한 조각이 있었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 선택한 모든 휴식의 시간에 대해 후회도 없고 하루 하루를 잘 지내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저 대책없고, 헛되고, 쓸모없는 무용한 시간이 아닐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스로를 가장 안쓰러워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재충전하며 잘지낸다는 표면의 나 밑에, 잘 숨겨놓은 그 마음을 정확하게 정조준해서 끄집어내 가시로 쿡 찔러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친구의 말이 내게 들려온 것이다. 내 마음을 거울로 비추듯이.


모든 이 기간의 성과란 내 내면에만 있어 오로지 나만 아는 것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같은 것은 없는 시기이다. 아무도 알 수 없어 알아주지 않는, 모든 커리어와 일이 일시정지 되어버린 것 같은 이 시기를 통과하며 필연적으로 불쑥불쑥 올라올 수밖에 없는 불안감을 느끼던 중이니, 그 친구의 ‘30대 내내 ...’ 운운에 더욱 화가 났었던 것이 아닐까.


화가 날 때는 먼저 내 마음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것 같다.

왜 내가 이 말에 화가 나는 건지.

내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근본적인 이유는 꽤 많은 경우 내 안에 있으니.

물론, 내 마음과 상관없이 당황스러운 일들이 벌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


그런 와중에 또 한 친구는 열을 내며 이야기해주었다.

30대 동안 회사다니고 돈모으고 결혼하고 집사고,

한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식으로 30대 내내 아프냐는 말을 하냐며 나보다 더 부들부들...

기운내라고 더 많이 그렇게 얘기해줬을 거란 것도 느껴졌다. 


내 마음을 더 잘 보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마음 불편하고 속이 상하긴 했던 시간.


또한 한 편으로는 고마웠다.

다독임과 응원 모두.


그리고 내 마음의 어두운 구석에 빛을 비추어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준

그 날카롭게 느껴진 말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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