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주류 철학자들에게는 애정이 가질 않는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 튀어나온 못 같은 인간이라 그럴까. 나는 늘 비주류를 찾아다녔다. 롤에 미쳐있던 시절엔 하이머딩거를 고집했던 것도. 리버풀이 의적풀 소리를 듣던 시절엔 리버풀 팬을 자처한 것도. 굳이 '경제' 과목으로 수능을 보겠다고 한 것도(생각해 보니 이때도 경제 바이럴 많이 했다. ??: "경제가 진짜 블루오션이라니까" 그런데 정작 나는 대입을 정시로 치르지 않았다.). 철학과를 온 것도, 헤겔과 키에르케고르 사이에서 키에르케고르를 선택한 것도. 늘 다른 것보다 좁고, 개척되지 않은 길을 택했던 것 같다.
내 주변인들이라면 이젠 어느 정도 알겠지만, 요즈음의 내 심리상태가 안정적이진 않아서 (내 기준) 아주 '잔잔하게' 존재에 대한 논의를 거하는 『존재와 시간』을 읽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내게 미안하게도 또 다른 비주류 철학자가 하이데거라는 거인을 내 책장에서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다. 이 과격하고 폭력적인 유명론자가 내 심리를 안정시켜 주리라 기대하진 않지만(아마 반대일 테다), 적어도 전처럼 가슴이 뛰게는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막스 슈티르너, 내가 요즘 주변에 바이럴 하는 학자의 이름(필명)이다. 키에르케고르를 읽다가 지칠 때마다 읽던 책들이 몇 있는데,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 그의 사상과 전기』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6장쯤이었을까? 들어보지 못한 철학자의 이름이 누구나 들어봤을 철학자들과 엮여서 언급되기 시작한다. 포이어바흐, 엥겔스, 맑스, 후설, 그리고 니체. 니체는 이제 '좋아한다'고 표현하진 않지만, 나를 철학의 길로 이끌었던 남자이다. 그런 니체가 꾸역꾸역 숨긴 내면의 스승, 포이어바흐도, 엥겔스도, 맑스도, 후설도 어느 정도 그에게 이끌렸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의 이름, '막스 슈티르너'. 만약 이 사람에게 현혹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철학에 대한 열정이 식었던 것일 테다.
나는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막스 슈티르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걸 왜 읽냐?"도 꽤 다수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철학을 시작했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원래부터 나는 이런 걸 읽어왔는 걸 뭐 어쩌겠니'하며 나를 달래 본다. 그리고 사실 자프란스키가 슈티르너에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한 탓이 가장 크다. 아마 자프란스키도 슈티르너에 대한 매력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사람이 방구석에선 슈티르너를 읽었지만 그 누구도 "나 슈티르너 읽어요!"라는 사람이 없었다는 그의 서술에 따르면 슈티르너는 '철학자들의 철학자'인 셈이고, 달리 말해 내가 경외(사실은 '존중' 정도)하는 철학자들의 음침한 취미생활, (주변 사람들한테 표현했던 비유인) '철학자들의 야동'인 셈이다. 이렇게 말해도 안 궁금할 철학도가 있을까 싶다. 사실 나도 바이럴의 피해자이다.
아무튼, 이 학자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번역서 하나 없어서 캐임브릿지 대학에서 출간된 영문판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는 분은 아니지만) 박종성 선생님의 논문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 지쳐 이기상 선생님이 번역한『존재와 시간』을 꺼내 들었던 무렵...
2023년 02월 28일 부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이번 학기 <번역철학> 과제 정도로 뚝딱 넘기고 책장에서 2군 노릇이나 시키려 했던 슈티르너가 1군 주장 완장을 꿰차는 순간이었다. 나는 요즘 심히 불안해서 운명론적으로 사고해 보곤 하는데, 지금 모든 운명이 나를 슈티르너로 이끌고 있다. 분명 나는 지난 12월 즈음 슈티르너를 대충 보다가 말았고, 우연히 이번에 학회를 들어갔더니 니체를 읽게 되었고, 우연히 학회에서 슈티르너 이야기를 꺼내볼 기회가 있었고, 우연히 때마침 <번역 철학> 발표 과제를 슈티르너로 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까. 이러니 이 학자를 정독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변명하면서 정독할 예정이다).
19~20년도에 모 선생님이 스토아 철학으로 은근슬쩍 바이럴을 하셨다. 2년에 걸쳐. 그러면서도 늘 '너무 자폭하자는 것 같아서 읽으라고 권유는 못하겠는데~'란 말을 덧붙이셨다. 진심으로 권유하실까 봐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스토아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이 얼마나 고된지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그 선생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감히 추측하건대, 본인이 그렇게나 끌리니까, 조금이라도 홍보하고 싶은 마음이셨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렇거든.
요즘 내 유일한 즐거움이 철학하는 건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주신 박종성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슈티르너에 대한 국내 연구조차 미비한 환경에서 이 큰 책을 번역하신 노고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요즘 들어 부쩍 '죽어도 괜찮겠는데?'란 생각과 '그런데 굳이 죽을 이유가 있나'란 생각, 그리고 '내가 죽고 난 뒤의 엄마' 생각이 마치 신호등처럼 한 번씩 불쑥 내 머리에 떠오르는데, 불 하나가 더 들어온 느낌이다. 꽤 재밌다고 느끼는 철학자를 찾아서. '죽어도 괜찮겠다'란 위험한 생각이 들어오는 시간이 조금 줄은 셈이다. 훗날 시간이 지나면 박종성 선생님께 '당신께서 어쩌면 당시 내 삶의 구원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인사라도 남겨야 하나 싶다. 그리고 광고 많이 했으니까 인센티브라도
다음번에 글을 쓰면 '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진 않았는데, 나는 향후의 문체나 문장 구성, 구조를 바꿔볼 계획이다. 철학인들은 누구나 다 힙스터이고, 철학이 은근 문서화된 힙합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요즘이라 그런가. 내 최애 앨범인 양홍원의 <오보에>를 미친 듯이 다시 듣고 있고, 또 <오보에>가 역으로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런치 소개에도 글을 힙합 앨범처럼 구성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앞으로 있을 대부분의 글들을 그런 태도로 쓰지 않을까 싶다. 자세한 건 다음번에 이런 글을 쓸 때 논해볼 계획이고, 당분간은 과거사 글에 집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