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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Sep 01. 2021

출산 후에 달라진 생각의 변화

해리포터와 둘리가 다르게 보이네?

아기를 낳고 나니 참 신기하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모의 눈'으로 바뀌어 버렸다.


처음 내 시각이 '부모의 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면서부터였다.


아기를 모유수유하면서 TV를 보고는 했던 초반에 나는 긴 모유수유 시간 동안 많은 TV를 보았다. (아기가 많이 자란 지금은 무거운 아기를 수유쿠션에 올렸다가 아기가 떨어질까 봐 무서움+아기가 빠는 힘이 좋아져서 젖 먹는 시간이 크게 줄어듦+아기가 자꾸 TV를 열심히 쳐다봄+누워서 먹이는 게 편함 등의 이유로 눕수만 하게 되어서 TV를 안 보고 있지만..)


나의 다소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이 드러나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봤던 것들을 열거하자면,


넷플릭스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 정주행, 드라마 '프렌즈' 정주행, 예능 '방구석 1열' 정주행,


왓챠에서 드라마 '아는 와이프'와 '프로듀사' 정주행,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아기공룡 둘리' 정중행, 예능 '애로 부부'와 유튜브 '케미 TV 사랑과 전쟁 시리즈' 정주행..


이 정도가 있다.


이 중에서 ‘아는 와이프’는 남편과 함께 보았는데, 부부가 함께 보면 얘기할 만한 점이 참 많은 드라마여서 좋았다.


결혼 후 쌈닭이 되어 소리소리 지르면서 바가지만 긁는 아내를 이해하게 된 지성이 “네가 괴물이 된 줄 알았는데, 내가 널 괴물로 만든 거였구나.”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고 우리 남편도 지성을 따라 눈물을 글썽이며 울었다. (그렇게 몰입할 정도로 아내가 괴물이 되었다고 여겨졌던 거냐!?ㅠㅠ)


직장에 다니면서는 잘 보지 못했던 많은 드라마와 예능, 영화를 보았는데 참 신기하게도 아기를 낳고 나니 예전과는 약간 다른 '부모의 눈'으로 내가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깨았다.


1. 해리포터 시리즈 :


어릴 때에는 그저 꿈과 마법의 학교였을 뿐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어찌 저렇게 위험한 학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퀴디치 경기는 어쩌면 저렇게 위험해 보이던지.. 마법의 빗자루를 처음 배우는 시간에 네빌이 빗자루를 잘 다루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게다가 그런 위험이 모두 학생 개인의 잘못으로 몰리는 모습을 보고서"학교 수업 시간이 저렇게 위험하고 무책임해서야 어떡해!"라는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게다가 늑대인간에 볼드모트 부하, 사기꾼 등등 학교에 위험한 교사들을 전혀 걸러내지도 못하고 저렇게 고용하다니, 정말이지 막장 학교로구만! (매년 바뀌는 어둠의 방어술 선생님이 그해의 빌런)


저런 학교에 내 아이를 절대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해리포터와 그 친구들의 용감해 보였던 모험이 철없는 아이들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난들로 보였다,


그러면서 리 아가는 나중에 커서 저렇게 위험 속에 사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이 굴지 말고 조심성 있고 신중해서 다치거나 위험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싶어졌다. (제발 아프지도 다치지도 말아줘, 복주야ㅠㅠ)


 아아, 내가 이렇게 별수 없이 꼰대이자 학부모가 되어버렸구나 라는 생각 들면서 왜 내가 조금만 위험해 보이는 짓을 하면(예: 오토바이 사기) 부모님이 질겁을 하며 혼내셨는지 알 것 같았다.



2. 아기공룡 둘리


아기가 공갈 젖꼭지를 처음 물기 시작했을 때, 그 모습에서 희동이의 모습이 보였다.


우왕 .. 너무 귀여워!

쪽쪽이를 문 복주

처음 쪽쪽이를 문 아기의 귀여움은 치사량을 넘어섰다.


쪽쪽이를 보니 왠지 희동이가 생각나서 왓챠로 둘리를 다시 틀었다.


둘리가 얄미워지고 고길동이 성인군자로 보이면 어른이 된 것이라던가..!


고길동이 군자로 보였던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보기 시작할 때 내가 보는 눈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역시 둘리가 불쌍한 캐릭터였다.


작중에서 둘리는 희동이의 보모로 일하는데, (고길동이 둘리에게 "아기 보는 것은 네 일이다!"라고 말하며 둘리가 희동이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게 한다.) 하루 종일 희동이를 보는 것은 정말로 둘리뿐이었다.


아니, 아기를 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요즘 베이비 시터 값이 얼마나 비싼데..!

이제부터 아기 당번은 너다, 둘리야!

게다가 마법을 부리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우주와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 어디서도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초능력으로 혹시라도 아기가 위험할 만한 일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고(만화에서는 희동이가 책장을 잡고 올라가다 떨어지려고 할 때 둘리가 "호이!"하고 희동이가 다치지 않게 해준다.), 페이는 밥값과 가끔 치는 사고에 대한 수습 값이 다인 보모라니.. 개이득? (아 하지만 생각해보니 꼴뚜기별 왕자님 편에서 집 한 채가 날아가긴 했었구나...)



3. 베르사이유의 장미


만약 아기가 태어났을 때 처음부터 성별을 반대로 취급해서 기르면 저렇게 다른 성별의 사람처럼 자라나는 게 가능할까?라는 부모적인 질문이 생기고,


유모의 손자 앙드레와 친구처럼 자라나는 오스칼을 보면서는 젖을 대신 먹여 주는 ‘유모’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시대의 '유모'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유모를 먼 옛날에도 두었던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모유수유'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당시 귀족 여성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유모를 고용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고, 그들은 사교 활동을 하느라 아기를 거의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귀족 아이들은 유모를 친부모보다 더 가깝게 느끼곤 했다고 한다. 대귀족의 아이의 경우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얼굴을 마주하는 게 3~4살쯤인 경우도 허다했다.


'만들어진 모성'이라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책을 보면, 상류층이 자신의 젖을 아기에게 직접 주기 시작했던 것은 장 자크 루소를 비롯한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과 프로테스탄트가 '모성애'의 개념을 중시하면서 모유수유를 강조하면서부터 서서히 시작하여, 19세기 이후 근대 국가에서 '모성애'의 신화가 거세게 바람 불기 시작했을 때라고 한다.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해지면서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웠던 국가가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들에게 '젖을 물리라'고 설득하면서 여성들은 모유수유에 대거 나서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든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걸 보면 모성애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유모가 주인의 자식에게 젖을 주게 되면, 유모의 친자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모로서 젖을 물릴 수 있다는 것은 자식을 최근에 출산했다는 이야기이므로 당연히 자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아이에게 주는 젖이 모자랄까 봐 많은 주인들은 유모가 자신의 친자식에게 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몰래 자신의 친자식을 찾아가 젖을 물린 유모는 매를 맞기도 했고, 주인의 자식에게 잠시라도 눈을 뗐다가 아기에게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유모는 벌거벗은 채로 매를 맞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모는 주인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느라 친자식에게는 잘 찾아가지 못했고, 찾아가더라도 젖 대신 빵이나 미음, 수프 등을 주었는데 그런 것을 잘 삼키지 못하고 돌봄이 부족하여 영양이 부족해진 친자식이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돈과 권력으로 하층 아기들이 먹어야 할 젖을 상류층 부모들이 빼앗아 오는 셈이었다.


새삼 내 아이에게 젖을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평등한 현대사회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그러운 주인을 만났을 때에는 유모의 친자식이 주인의 자녀와 형제처럼 자라기도 했는데, 오스칼과 앙드레 사이처럼 무술 훈련 및 공부를 같이 하면서 옆을 지키는 친위병 같은 노릇을 했다고 한다. (여자라면 아가씨의 몸종이 되어, 젖자매인 아가씨가 시집갈 때에도 따라가는 몸종이 되었다. 시집을 갈 때에도 젖자매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내가 젖이 잘 나오지 않아서 할아버지 댁의 아이 낳은 하녀를 유모로 데려가려는 서울의 손자에게


“젖먹이 딸린 여종을 유모로 데려간다니 안 될 일이다. 아이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아니냐. ‘남의 자식을 죽여 제 자식을 살리는 것’이니 절대 안 될 일이다. 여기에 아이를 두고 어미만 가게 하는 것은 어진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이 몹시 불편하구나.”


라고 하면서 여종을 유모로 보내지 않았던 퇴계 이황 선생은


소외되었던 약자를 존중하는 참으로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배운 사람이었구나 싶어 진다.


(슬프게도 퇴계 이황의 증손자는 엄마 젖이 부족한 탓인지 결국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4. 저 아이를 어떻게 키운 걸까?


TV나 주변을 보면서 “저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 저렇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된 사람은 잘 된 대로, 잘 안 된 사람은 안 된대로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어린 꼬마 아이가  음악적 감각과 재능이 아주 뛰어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저 아이의 부모는 저 애를 어떻게 키웠을까 궁금해지고,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꽃 피우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고는 한다.


라우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춤 신동, 고키와 케이주


‘미저리’, ‘쇼생크 탈출’, ‘샤이닝’, ‘캐리’, ‘미스트’ 등 영화화된 수많은 소설을 쓴 소설가 스티븐 킹은 자신이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격려 때문이라고 했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보면, 어느 날 스티븐 킹이 잡지에 실린 삼류 만화를 베껴서 어머니에게 보여주자 스티븐 킹의 어머니는 아주 기뻐하며 “네가 쓴 거니?”라고 물었고 이에 킹이 다른 만화를 베꼈다고 하자 실망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왕이면 네 얘기를 써봐라, 스티브. 이 만화책은 허섭쓰레기야. 너라면 훨씬 잘 쓸 수 있을 거다. 네 얘기를 만들어봐.”


스티븐 킹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신에게 엄청난 ‘가능성’이 펼쳐진 듯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마치 커다란 건물 안에 들어가서 그 수많은 문들을 마음대로 열어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고, 그 문들은 평생토록 열어도 미처 다 열어보지 못할 것 같았다고 한다.


이 일화를 보면서 부모로서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감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부모의 한 마디 말과 격려와 응원이 얼마나 아이에게 평생 동안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뿌리 깊은 지지대가 되어 주는지 알 수 있었다.  


만화가 기안84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해 “나에게는 이 세상에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다 용서해 주지 않냐”라고 얘기했던 것을 보면서도, 양육자의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커다란 추억과 그리움으로 드리워지고 나이가 들어서도 커다란 사랑을 받았던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게 되는지 느꼈다.


웹툰작가인 기안84가 회고하는 할머니


‘다 용서해 주는 사랑’..


이것이 훈육 없이 무조건 아기를 오냐오냐 키워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먼 훗날 아이가 자라서도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라는 단단한 사랑의 기억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도 우리 복주에게 그런 사랑의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한편으로는 온갖 죄 뉴스를 보다 보면, 저 범죄자의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터질까 싶을 때가 있다. 특히 공부도 잘하고 남보기에는 잘 자랐다고 보일 만한  자식이 느닷없이 범죄자로 전락한 뉴스를 보면 그렇다. 그런 이들의 부모는 아마 자신이 잘못 키워서 그렇게 되었다고 자책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면 우리 아이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성의식을 심어 주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피해자들도 큰 트라우마와 고통에 시달릴 텐데, 이제는 이런 사건을 보면 피해자뿐 아니라 그 피해자의 부모도 얼마나 분노스럽고 마음이 힘들지 생각해 보게 된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도 정말 경악할 만한 언행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게 되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같은 엄마로서 금쪽이의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어떻게 키워야 저런 결과를 피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들었다.

역대급 금쪽이었던 엄마를 때리는 열 살 아이


어쩌면 말도 하지 못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 젖만 기다리는 아기일 때가, 엄마만 보면 그저 생긋생긋 웃어주는 천사인 지금일 때가 가장 커다란 고민 없이 아기를 편하게 키울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기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효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부모로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결국에는 내가 아기에게 거울이 되고 롤모델이 될 테니까.. )


내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세상을 향한 편견이나 뒤틀리고 왜곡된 생각, 편협한 사고방식 등은 아기에게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어떤 생각 중에 일부들은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는 생각이라는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경우가 있는데, 부모로부터 배운 가치관이나 생각이 교정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증법적 부딪침이 있어야만 했다.)


아직은 아기가 어려서 잘 모를 테지만, 이 아기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되고 나를 보고 배우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이 되고는 한다.


물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해도 운이 나쁘다면 금쪽이 같은 상황이 닥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아마도 언젠가는 나 역시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끝없이 고뇌하고 자책하고 책에서 답을 구하기도 하고 아이와 지지고 볶으면서 키우는 그런 순간들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아이를 키우면서 어찌 그런 순간이 없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나 역시 힘들어서 아이가 미워지고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고는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부모가 되고 싶..


아이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자존감과 배려심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복주야, 조금만 기다리렴..


조금만 더 크면 엄마가 재밌는 책도 많이 읽어주고 아름다운 풍경도 많이 보여주고 널 웃게 하는 놀이도 같이 많이 해주고 네가 아주 사랑받고 있는 아이라는 걸 많이 느끼게 해 줄게.


다양한 경험과 배움 속에서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엄마가 함께 찾아줄게..


네가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 친구처럼 의논할 수 있는 카운슬러가 되어줄게..


엄마가 너와 함께 하는 걸 허락해 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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