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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소년 Jun 13. 2024

남부왕 아부지!

나 19살 토익만점 글로벌 자율주행 AI 팀장

젊은 시절 꿈소의 아부지 '남부왕'


대연 6동 달동네에 어둠이 내리고 골목에서 시끌벅적 삼삼오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일순간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좀 더 짙은 어둠이 내리면 갑자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천둥 같은 목소리가 집집마다 담을 넘어 울린다.

 

“내가 누군 줄 아나? 내가 바로 남부왕이다!”

“내가, 내가 남부왕 박찬술이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마치 개선장군처럼 쩌렁쩌렁 우렁찬 목소리로 온 달동네를 긴장시키는 남부왕이 바로 꿈소의 아부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동네어귀에서 지르는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와 벌써부터 꿈소의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이 시간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에 작은 개미 소리도 꿈소의 귀에는 말발굽 소리처럼 크게 들리는데 온 동네를 뒤흔드는 아부지의 우렁찬 고함소리는 분명 심장을 멎게 할 만큼 먹먹하다. 동시에 아부지의 술주정 소리에 오싹한 두려움도 느끼며 오늘만은 제발 무사히 긴긴밤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일단 남부왕으로 변신하게 되면 아부지는 밤새 술주정을 하였고 가족들을 너무 힘들게 하였다. 어린 꿈소의 눈에 아부지는 마치 영화 '두 얼굴의 사나이' 속 변신한 헐크처럼 거대한 괴물이었다. 이때부터 어느 순간 꿈소는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스스로 최면을 걸어 상상을 통해서 현실을 벗어나는 꿈을 수도 없이 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부지는 왜 술만 마시면 동장이나 구청장이 아니라 남부왕이라고 소리 지르며 세상에 부정부패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까지 술의 힘을 빌어 훈계하는 걸까? 멀쩡한 정신으로 훈계하면 안 될까?


어린 꿈소는 술만 마시면 남부왕으로 변하는 아부지가 동네사람 보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웠는데 아부지는 왕이라서 그런지 술을 깨고 나서도 전혀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그 시절 어린 마음에 꿈소는 그래도 아부지가 시시하게 동장도 아닌 남부왕이라고 저렇게 목청껏 외치는 것을 보면 우리 아부지도 부모를 잘 만나 조금만 교육을 잘 받았어도 왕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상상하곤 했다.

  

아버지는 체격이 다부지고 힘이 장사일 뿐만 아니라 달동네에서 그에게 술을 대접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량이었다. 오늘도 온종일 힘들게 막일로 번 돈으로 친구들을 모아 기분 좋게 한잔하고는 남부의 왕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귀환하는 중인 것이었다.


몸이 어찌나 건강한지 술에 취하면 지쳐 푹 주무셔야 하는데 밤새도록 세상을 훈계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또 노동일을 하러 나가셨다.   

  

꿈소의 아부지는 가엽게도 어릴 적 친어머니가 멀리 만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아서 어머니 없이 자라났다. 친아버지도 일본으로 장사하러 떠나면서 꿈소의 아부지를 먼 친척 집에 맡겼고 그렇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친척 집에서 홀로 눈칫밥을 먹으며 불쌍하게 자라셨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아부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도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사랑할 줄도 모르셨다. 꿈소가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아부지가 꿈소와 다른 형제들을 사랑스럽게 안아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어깨너머로 일어, 영어, 중국어 인사말 몇 문장을 외우고 다니면서 자신이 4개 국어 사용자라는 것을 술만 마시면 꼭 잊지 않고 뽐내었다. 아부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고 어릴 때 받지 못한 관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받기 위해 애쓰다 보니 어머니의 삶이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이사 올 때 논과 밭을 팔아 꽤 많은 돈을 가지고 부산에 왔는데 배움이 없고 순박한 아부지는 도시의 하이에나들에게 아주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어머니가 "우리는 자식이 많아 전세나 월세를 구하기 힘드니 허름한 집이라도 꼭 집이 필요하다"라고 우겨 달동네 꼭대기에 비록 허름하고 볼품은 없었지만 방이 10개나 되는 긴 스레트 집을 산 것이었다. 그 덕분에  꿈소는 '주인집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행운도 생겼다.


방들은 5평 크기로 방과 연탄 부엌으로 이루어졌다. 가끔 방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방을 구하러 오는 사람 중에 아이들이 많으면 시끄럽고 집이 관리가 되지 않아 아이가 많은 가족에게는 세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 세를 얻으러 오는 분들은 아이가 없다고 하거나 한 명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이사를 오는 날 보면 아이들이 우르르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 있었고 거기에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좁은 방 하나에서 생활한 것인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꿈소를 비롯한 형제들은 달동네의 우리 집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새 학기에 담임 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는 날이면 지리가 어두운 선생님을 모시고 달동네 주위 몇 바퀴를 빙빙 오르락내리락거리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부족한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 집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선생님을 집에 모시고 온 적이 없다.


10 가구 안주인이신 우리 어머니는 성격이 너무 강직하셨고 불쌍한 사람들이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면 세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쌀이나 반찬을 나누어 주며 힘내라고 격려해 주셔서 10 가구 판잣집의 천사로 불리셨다.


달동네 사람들은 각자의 수많은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모여 살았고 부모들의 결핍은 대부분 자녀에게 그대로 물려졌다. 꿈소가 달동네의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꿈소 어머니의 곧고 정의로운 성품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집을 사고 남은 돈을 눈치 빠른 도시의 하이에나의 감언이설로 돈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몇 번이나 꼬임에 넘어간 아부지는 마침내 모든 돈을 다 사기당하고 수중에 돈 한 푼 남지 않게 되었다.


어리숙한 시골 농부가 도시의 하이에나에게 모든 돈을 사기당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속에 큰 울분이 있었겠는가? 아부지는 아마 이때부터 술만 마시고 나면 남부왕으로 변신하게 된 것 같다.


울화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다 보면 술이 아부지를 집어삼키고 아부지를 남부왕으로 변신시켜 부정부패한 정치부터 나쁜 사기꾼 처벌까지 왕이 되어 아부지 마음껏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렇게 달동네 아버지들이 이런저런 각자의 억울하고 분한 사연을 술에 의지해 해결하다 보니 달동네 아이들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달동네의 늪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렸고 결핍은 계속해서 대물림되었다.     


이런 남부왕에게 꿈과 희망을 준 일등공신은 단연코 유빈이와 휘성이었다. 꿈소가 대기업 연구소를 그만두고 벤처기업 대표가 되어 세계를 연결하며 승승장구하다 큰 기업 회장에게 특허기술을 이용당하고 계약서 마저 빼앗겨 모든 것을 잃고 산골축사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남부왕이 아닌 '세계의 왕'으로 변신할 뻔했는데 하늘의 선물인 유빈이 휘성이가 태어나자 아부지는 다시금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손자들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음을 아시고 아부지도 손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그때부터 술도 줄이고 온 동네 청소와 궂은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아부지 마음속 깊은 곳에 손자들이 자라 아부지와 같은 '남부왕'이 아닌 정말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비록 작은 힘이라도 손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는 70살이 넘도록 자식들의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다. 유빈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아버지를 모시려고 했지만 산골축사의 어려움을 부모님이 보시고 불편하실까 초대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양수리 강 옆에 아름다운 아파트로 이사하고서야 휘성이 입학식에 용기를 내어 초대했는데 부산에서 양평까지 흔쾌히 그 먼 길을 색동 한복 멋지게 차려입고 완행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


기차 안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이 “어르신, 이렇게 멋진 한복을 입고 어디 가세요?” 하면 “우리 손주 입학식에 간다.”라며 신이 나서 손주 자랑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양평역에 도착하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휘성이 옆에 앉은 아부지도 마치 처음 입학하는 학생처럼 가슴 설레며 긴장하셨다. 이날 생애 처음으로 입학식에 참가한 아부지는 자신 역시 입학식의 주인공이 되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죽는 날까지 간직하셨다.

 

휘성이의 입학식은 아부지에게 자신이 살아온 모든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녀들에게 사랑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후회하였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여러 번 눈시울을 붉히며 자식들을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날부터 할아버지에서 아버지가 되어 비록 자식들에게는 부족하고 어색하지만 사랑을 나누려고 애쓰셨고 그러한 노력들이 꿈소의 마음에 아직까지도 찡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아부지는 매달 나오는 노인 연금을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유빈이와 휘성이 대학 등록금으로 주기 위해 은행에 꼬박꼬박 모으셨다. 유빈이와 휘성이 대학 등록금을 당신이 오래 살아서 다 준비할 것이라고 넘치는 삶의 의지도 보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건강하던 대연 6동 남부왕 아부지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 계단에서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꿈소가 아는 아버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셨다. 하지만 위암 말기로 판정받은 아부지는 조금만 더 오래 살고 싶어 했다. 유빈이와 휘성이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이다.


혼수상태로 깨어나기를 몇 번을 하면서도 문득 의식을 차리면 아부지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큰 소리로 "내가 누군 줄 아나!  내가 박유빈이와 박휘성이 할아버지야!' 아부지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유빈이와 휘성이를 자랑스러워하고 잘 되기를 바라셨다.


아부지는 지구별을 떠나시는 마지막 날까지도 유빈이와 휘성이의 앞날을 축복하셨고 세상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할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이루도록 하늘나라에서 조차 돕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남부왕이셨던 꿈소의 아부지는 89세의 나이로 밤하늘 오래오래 빛나는 별이 되셨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휘성이 입학식 참석하신 아부지




   70이 된 아버지의 입학식        

 


                                                  꿈 소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우리 아버지는

매일같이 캄캄한 새벽에 나가 캄캄한 밤에 오셨다


우리들 안고 놀아주는 것은 기억이 아물아물

아버지 얼굴이 변해 가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는 엄마 없이 어린 시절 서러운 눈칫밥 먹으며

사람끼리 정을 나누는 것도 모르고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 성장했다     


자식들의 재롱도 모른 채

입학식 졸업식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70의 늙은 고목이 되었다    

 

7살 손주의 시골 초등학교 입학식 날

70의 아버지는 색동한복 곱게 차려입고

다정하게 어린 손주의 손을 잡고

손주와 나란히 교실에 앉았다    

 

70이 된 늙은 아버지가 7살 손주 보다 더 설레던 날

그날부터 임종 때까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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