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얼음 왕국으로 만들어 삶의 의욕조차도 꺾어 버리는 산골축사의 겨울을 힘겹게 지나고 나면, 새롭게 피어나는 봄 햇살이 그토록 잔인했던 겨울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모진 겨울을 몇 번 보내고 나니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 자라는 게 좋겠다는 꿈소의 고집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꿈소 아내도 조심스럽게 "아이들이 학교 입학하기 전에 우리도 학교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몇 번이나 흘러가듯 이야기하였다.
무거운 세금이 체납된 중고 승용차에 값싼 세녹스를 넣고 쿠르릉 쿠르릉 거리며 서종에 있는 개울가로 아이들과 물놀이 가던 중 강가 옆에 우뚝 솟아 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아파트가 꿈소 부부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물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그 아파트가 꿈소 부부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꿈소 아내의 입에서 무심결에 "저 아파트 정말 멋지네. 저런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낮고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꿈소의 얼굴이 화끈거리고 귀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꿈소가 어떤 사람인가? 팔당으로 오기 전에는 대한민국 2334개 동과 상가 300만 개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이버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세계 1억만 개 홈페이지를 공급하여 세계의 물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려던 촉망받던 벤처 대표가 아니었던가? 그 어떤 역경에도 강철처럼 굳건했던 꿈소의 마음이 아내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꿈소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남부왕 아부지 DNA를 가진 찐 부산 사나이의 카리스마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저 아파트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일단 부딪쳐 보는 거지. 최소한 얼마를 준비해야 저 멋진 아파트에 살 수 있는지 정보라도 알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아파트 근처 중개 사무소를 찾아 무작정 갔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눈에 딱 띄는 간판이 걸린 부동산에 들어가 호기롭게 "저기 강 옆에 있는 멋진 APT 시세가 얼마나 되나요?" 당찬 목소리로 물어보는 모습에 바로 거래가 성사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가 보다. 반쯤 졸린 눈으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던 중개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급 친절 모드로 "정말 잘 찾아오셨습니다"라며 "급매로 1억 7천5백만 원에 나온 아파트가 있는데 바로 보러 갑시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꿈소 팔을 잡아 이끌었다.
10분 만에 도착한 강변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리자 고급스러운 실내 장식과 큰 창으로 강이 내려다 보이는 거실의 모습에 꿈소와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주인은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분이 자신의 집을 급하게 팔아야 하는 사정을 30여 분간 설명하는 동안 꿈소의 머리에서는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슈퍼컴퓨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주인께서 아파트를 매도하기 위해 새벽기도까지 하시고 제 아내도 여기 아파트 한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니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 어쩌면 해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소의 말에 주인이 얼마나 사정이 급했던지 지금 산다면 1억 6천5백만 원으로 천만 원 가격까지도 내려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꿈소는 가진 돈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우선 중개사에게 물었다."지금 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이 얼마나 가능한가요?" "신용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1억 1천만 원 대출이 가능합니다" 그럼 한 가지 조건만 더 맞아지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주인에게 "아파트 계약을 하고 나서 저희가 여기에서 살 수 있는 형편이 안됩니다. 몇 년만 살아 주시면 안 될까요?" 하였더니 주인도 대뜸 "급매로 팔고 나면 저희도 당장 이사 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잘되었군요. 주인께서 전세로 7천만 원에 사는 것으로 하면 오늘 이 아파트를 사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고 하였던가?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꿈소가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어이가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꿈소 가족에게는 멋진 궁전 한 채가 생겼다.
꿈소는 사업으로 인해 신용 불량이었지만 아내의 신용으로 1억 1천만 원을 대출받았고 아내의 소원을 이루고도 수중에 1천5백만 원이라는 돈이 덤으로 생겼다.
꿈소가 한창나이에 사업으로 주저앉아 가난하고 거기에다 허리까지 부실하여 꿈소 아내에게 부산 사나이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가장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준 것 같아 내심 뿌듯하였다.
이 계약으로 몇 년 뒤 유빈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 아내가 꿈꾸었던 강변 옆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아파트는 등기만 우리 것이지 전액 대출을 받아 매달 갚아야 할 이자와 생활비는 산골축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지출되었다.
유빈이와 휘성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수 없이 반복했던 아내의 영어 실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초등학교에 특이한 아이 두 명이 입학하자 자녀를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 유빈이와 휘성이가 영어 천재로 빠르게 소문이 났다. 아이들로 인해 영어과외를 받으려는 학생을 쉽게 구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필요한 생활비가 해결되었다.
산골축사에서 악기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학교에서 무상으로 하는 음악 교육을 찾던 중에 사물놀이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원자가 많으면 들어가기도 힘들 텐데 사물놀이는 경쟁자도 없어 선생님에게 개인교습을 받듯이 지도를 받았다.
아이들이 신나게 사물놀이를 배우고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 빈 그릇과 장난감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았다.
"유빈아, 휘성아. 전 세계 사람들이 한류에 관심이 많은데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어린이 스타가 될걸? 방송도 나갈지도 모르고 외국에서 초대를 할지도 모르지"라고 말하니 유빈이와 휘성이는 해외 특히 미국에 가보고 싶어 했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사물놀이의 사물은 저마다 다 특징이 있으니 특징을 영어로 설명하고 연주를 하면 세계의 친구들이 다 이해하게 될 것이고 관심도 많이 가질 거야!"
K-POP BTS를 능가하는 9살 사물놀이 영어 명연설
그때부터 꿈소의 가족은 " K-POP BTS를 능가하는 9살 사물놀이 영어 명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1개월간 영어 콘티와 사물놀이 연주를 준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 중에 재미있는 과제를 하나 선정하고 그것을 함께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이끌어 줄 때 "이것을 해 놓으면 너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야. 이게 다 너를 잘되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 열심히 해!"라고 하면 아이들 대답은 언제나 즉각 명쾌하게 돌아온다. "싫어요. 됐거든요!"
자녀가 어릴수록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배우는 것이 활용이 되고 그 결과물로 칭찬과 격려가 바로 돌아오는 과제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면 자녀 교육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빈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열심히 만든 사물놀이 영어 연설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으니 자신이 고생한 것이 크게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칭찬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나가며 포기하지 않게 해 주는 종합 비타민이었다.
유빈이가 사물놀이 작품에서 얻은 성취감이 가야금으로 이어지고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이어져 지치지 않고 악기를 배워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자신이 배운 악기는 주변 친인척이 있는 곳에서 연주회나 작품으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노력한 보람을 칭찬과 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한 노력들이 층층이 쌓여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학생 문화외교관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