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우리나라에 IMF라는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가 들이닥쳤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부도로 문을 닫게 되면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가정을 책임지던 가장들이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행복했던 가정들이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위기도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꿈소는 그런 암흑의 시기였던 1997년에 높은 경쟁률의 대기업 취업 문을 뚫고 당당히 현대그룹에 입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대그룹 신입사원 대표가 되어 교육생들을 잘 이끈 공로로 그룹 최우수 신입사원으로 선발되었고 최우수 사원에게 주어지는 부상으로 해외를 견학하며 현대그룹의 미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꿈소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을 모아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를 겪는 어려운 이웃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단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봉사단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져 현대그룹 면접에서 높은 가산점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타인을 위한 진정한 봉사는 반드시 더 좋은 보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소중한 교훈도 얻게 되었다.
그때 당시 주위에서는 현대그룹 연구소에 다니는 꿈소를 다들 부러워하였다. “이런 IMF 시국에 좋은 직장을 다녀서 참 좋겠다”라는 인사치레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1998년 어느 날, 입사한 지 1년을 조금 넘기고 나서 남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던 꿈의 직장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꿈소의 말에 주변 가족과 지인들은 그 좋은 직장을 하필 이런 IMF 시국에 그만두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다들 아우성이었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한동안 반대가 들끓었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전에 고등학교 자퇴를 강행한 경험이 있어서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 그리고 지인들은 꿈소가 한번 마음먹은 일을 결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 최소한 결혼만이라도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에 퇴사하라고 끝까지 만류하셨다. 하지만꿈소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그때가 결혼 적령기였고 사귀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혹시 있다 하더라도그것은 무엇보다도 상대 배우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정된 직장에서 결혼했더라면 유빈이와 휘성이라는 캐릭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비록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는 하였지만 아픔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소가 현대그룹 연구원이라는 꿈의 직장을 포기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당시 그룹 전체가 말단 직원부터 최고 임원, 회장까지 인터넷으로 모든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향후 다가올 인터넷이 만들어 낼 무서운 시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21세기는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고 세상을 먼저 연결하는 나라가, 아니 개인이 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온몸에 전율이느껴지면서 꿈소의 도전의식이 꿈틀거렸고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연구소 소장님과 선배 연구원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퇴직금 300만 원을 손에 쥐고 퇴사하였다. 꿈소가 오래전 자퇴로 고등학교 정문을 떠날 때의 막막함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슴 한가득 크게 품고서 연구소의 정문을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회사를 설립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기에 경비를 줄이기 위해 우선 모교를 찾아가 교수님의 도움으로 가장 뛰어난 후배들을 모아 학교 실험실에서 창업하였다.
회사 이름은 오케이타운(OKTOWN)으로 이름 지었다. 오케이타운은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터넷으로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회사였다.
먼저 대한민국의 243개 시 군 구의 2334개 동에 있는 300만 개의 상가 홈페이지를 만들고 소비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의 인터넷 상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꿈소의 목표였다.
당시 꿈소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제정신이냐. 그냥 홈페이지나 만들어서 하나라도 잘하지 무슨 대한민국 상가 전체홈페이지를 다 만든다고 하느냐. 그것은 미친 짓이다. 불가능하다”였다.
하지만 3년 뒤에 ㈜오케이타운은 결국 대한민국 2334개 동 300만 개의 상가 홈페이지를 완성하였다. 한 사람의 무모한 도전이 세상을 바꾸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었던 2000년,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했던 그때 그 시절에 꿈소는 누구든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의 상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다이얼 패드 무료전화기로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지자체 구청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이버 구청을 만들고 홍보하는 동안 언론에도 알려지고 투자자들이 서로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오던 중 통신 재벌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당시 통신업계의 대기업이었던 한국정보통신(KICC) 박헌서 회장 쪽에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꿈소는 그날 오랜 숙원이었던 세계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심장이 뛰고 흥분되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박헌서 회장님은 코넬대학교에서 정보통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대한민국의 초기정보통신의 선두를이끄신 대단한 어른이었다.
여의도 KICC 본사 사옥 회장실에 시간 맞춰 도착하니 비서실장이 회의실로 안내해 주었다. 회장님과 그룹 관계자들이 회의실로 다 들어오자 꿈소는 떨리는 심장을 누르며 열정적으로 오케이타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했다.
한국 정보통신의 전화번호부와 이지카드시스템을 오케이타운 자동화 홈페이지에 탑재하여 1억 개 상가 홈페이지를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포부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난 3년 간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결국 대한민국 300만 개 상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냈고 구동되는 것도 그 자리에서 직접 시연하며 확인시켜 드렸다.
발표가 끝나자 회장님이 일어나 큰 박수와 함께 꿈소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정말 수고했다고 자신의 젊은 시절 오일머니를 한국 통신사업으로 유치할 때가 생각난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함께 세계로 가보자고 하셨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큰 어르신이 오케이타운의 비전을 인정해 주는 것에 꿈소의 마음이 그만 울컥하였다. 지난 3년간 주위의 수많은 비난을 받으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피땀 흘리며 개발한 보람을 이 한순간에 다 보상받는 것 같았다.
박헌서 회장님과의 감격적인 만남을 가슴에 품고 3개월에 걸쳐 그동안 오케이타운이 이룩한 모든 기술 자료를 KICC와 공유하며 회장님의 투자만을하루하루손꼽아 기다렸다.
유빈이와 휘성이가 성장하여 어느덧 꿈소가 한창 꿈꾸던 그 나이만큼 자랐다.
유빈: 아빠, 100만 원만 지원해 줄 수 있어?
꿈소: 어디에 사용하려고 그래?
유빈: 이번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AI 대회를 개최하려고 하는데 상금으로 나눠 주려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유빈이의 큰 생각을 더 키워 주려면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꿈소: 유빈아, 지금 전 세계의 미래가 AI에 달려있어.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해야 하니까 네가 기획한 세계 AI 대회는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에서 아주 흥미를 느낄 것 같은데?
유빈이가 세계 AI 대회 개최에 대한 글을 영어로 작성해서 실리콘 밸리에 있는 각 회사 대표에게 보내 보면 어떨까?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아빠가 100만 원 마련해 줄게.
유빈: 그게 가능할까? 알았어. 그럼 실리콘 밸리 AI 회사 대상으로 이메일 보내볼게….
일주일이 지난 뒤 유빈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꿈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유빈: 아빠, 실리콘 밸리에 진출한 기업 CEO가 직접 나에게 전화가 왔어. 나에게 지원해 주기로 약속도 했고... 얼마 지원해 주는 줄 알아?
꿈소: 그래, 정말 잘 됐구나! 얼마나 지원해 주는지 정말 궁금한데?
유빈: 현금과 물품으로 약 1억 원 상당의 지원을 받기로 했어. 이제부터는 세계 대학생 중에 우수한 사람을 선정하고 운영위원을 뽑아서 대회 준비만 잘하면 돼.
꿈소: 우~~ 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유빈아, AI 대회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도록 신경 써야 해. 그래서 세계의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리더십에 감사하는 계기가 되기를 응원할게.
유빈이는 한 달간 세계 각국 우수한 AI 실력자들을 모아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밤낮으로 행사를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행사를 잘 마무리하였다. AI 대회 1등은 인도의 대학생이 차지했다.1등 상금을 인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수상자의 뜻에 감동하여 유빈이와 집행부도 함께 돈을 모아 인도에 기부했다.
세계 AI 대회 개최를 계기로 유빈이는 18살 어린 나이에 세계 청년지도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예전의 꿈소가 경험한 삶의 발자취가 유빈이를 세계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연결했다. 꿈소는 어렵게 세계를 연결했는데 영어에 능통한 유빈이는 너무나도 쉽게 세계를 연결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제 한국이라는 작은 울타리에 우리 자녀들을 가둘 때가 아니다. 한국의 우수한 DNA는 세계 문화와 기술을 선도할 수 있음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작은 도화지 그려진 꿈들이 세계로 이어지기까지 담지 못한 수많은 어려움이 있고 아름다운 이야깃거리 모두 다 담을 수도없다. 하지만미래를 꿈꾸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씩 정리하여 앞으로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재벌 회장님이 꿈소에게 투자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짧게 말하자면 그때의 꿈소는 사회 경험이 부족하여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냉혹한 사업의 생태를 잘 몰랐고 사람을 너무 잘 믿었던 것 같다. 재벌이나 그룹 회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 왕초보였던 꿈소는 아무런 대책 없이 계약서 한 장 없이 모든 사업계획서를 다 넘겼고 멋진 영화처럼 세계를 연결하여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를 만들 날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3개월이나 지난 뒤에 꿈소는 크고 멋진 회장실에서 회장님과 독대를 했다. 꿈소는 전 세계를 석권하고 싶은 열정으로 불타서 회장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꿈소가 가진 모든 주식을 회장님에게 주겠다고까지 하였다. 그분의 얼굴은 빨갛게 흥분되어 그 자리에서 우황청심환을 드시더니 쿠바산 시가에불도 붙이지 않고 계속 빨아대셨다.
“왜 주식을 모두 나에게 주느냐. 나는 받을 수 없다”기에 꿈소가 “가장 큰 이유는오늘 회장님이 오케이타운에 투자하시면 1억 개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계 인터넷의 주도권을 한국이 잡을 수 있고 대한민국은 장차 세계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케이타운이 성공하게 되면 제가 드린 주식의 50%만 저에게 돌려주시면 제가 받은 주식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재단 이사장님은 회장님이 먼저 하시고 차후에 저에게 물려주십시오."
박 회장님은 자신은 오케이타운에 투자하고 싶지만, 계열사 사장단이 반대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인간적으로 미안했던지 나를 개인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꿈소가 추구했던 것은 개인적인 안락이 아니었다. 가슴 벅찬 꿈이 있어 세상을 향한 도전장을 냈고 나를 믿고 따르는 수십 명의 직원이 있었고 그 무엇보다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평생 사명처럼 받들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박헌서 회장님의 개인적인 도움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회의를 마치고 회장실을 나오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내 가슴속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고여 흘러내렸다.
그들은 이후에 계열사에 증자하였고 오케이타운 아이템을 이용하여 또 다른 동네 정보망을 만들었다.
그때는 회장님이 왜 그리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후에 수많은 사업을 통해 냉혹한 사업의 세계에서 천사를 만나길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꿈소의 도전은 헛되지 않았고 비록 아쉬움은 많았지만, 꿈소의 도전적인 DNA는 유빈이와 휘성이에게로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한고비 한고비 잘 이겨내며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혹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겪어온 어려움이 아이들을 쓰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아이들이 글로벌 자율주행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꿈소도 다시 한번 세계의 물 문제와 자원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젊은 날 돈 많은 재벌을 찾아 문제 해결을 하려고 했던 꿈소는 이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재능 기부를 받아 세상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아름다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