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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03. 2020

여름방학

2017


1월 파운데이션을 모두 마친 후 갖는 여름방학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데 이 시기에 다들 한국을 갈지 말지 고민한다. 사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한국이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일찍이 표를 사놨었다. 향수병 없이 해외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한국에 가고 싶었다. 새로 접한 신기하고 색다른 풍경과 한국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집을 가끔 잊게 할 만큼이나 매력적일 때가 있었지만 내 친구들, 우리 집 강아지, 그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나의 것들이 보고 싶었다. 


파운데이션 통과 조건을 재시험이 보기 싫어 겨우 간신히 한 번에 통과한 나는 며칠 간의 휴일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때 같은 비행기를 타는 나와 내 친구 계좌에 각자 2유로 밖에 없었는데 환전을 하기엔 한국 갈 때쯤 돈이 들어와서 2유로 정도로 한 3일을 버틴 적이 있는데 진짜 다시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3일 정도를 둘이서 진짜 쌀과 기본적인 반찬들을 먹으며 기내식을 미친 듯이 먹겠다는 다짐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으로 가는 길은 설레기도 하고 앞으로 매번 여름방학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해 야한다는 게 까마득하기도 했다. 심지어 비행기가 엄청 흔들려서 앞뒤 양옆 사람들이 다 토했는데 이래서 비행기 공포증이 생기나 싶었다. 이때 이후로 원래 비행기에서 타자마자 잠들어서 도착해서 깨던 나는 비행기에서 잠드는 버릇이 사라졌다. 길고 긴 10시간가량을 늘 한 시간 정도 자고 나머지는 하릴없이 책을 읽거나 멍 때 리거나 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비행기가 흔들려 아무리 밥을 굶었지만 친구와 나는 절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렇지만 맛있는 비빔밥 냄새가 나는 순간 친구와 나는 그냥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토하더라도 먹자! 란 마음으로 진짜 싹싹 긁어먹었다. 그때 먹은 기내식이 내가 지금까지 먹은 기내 식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일 끝에 한국에 도착한 첫 느낌은 꿈꾸는 것과 같은 비현실 적인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 한국어로 적힌 안내판 등등,,, 누가 보면 외국에서 몇십 년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사람 같았겠지만 그때는 처음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여서 그런지 더더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한국을 들어올 때마다 내가 한국에 왔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것들은 사람마다 다른 거 같은데 나의 경우 지하철에 타는 것이다. 한국말 안내방송, 자리에 앉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귀에 들리는 다른 사람들 대화 소리 같은 것들을 지하철에서 들으면 정말이지 드디어 한국에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난다. 



한국에 도착한 후 짧지만 길었던 첫 유학 생활의 쉼표인 여름방학 앞에서 나는 나의 달라진 점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먼저 한국에 도착하자 살이 아주 많이 찐 나를 실감하게 되었고, 가기 전에 58킬로였던 나는 73킬로까지 살이 쪄있었다. 이때 찐 살은 아직도 전부 빠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매일매일 친구들을 만나고 서울을 걸어 다니느라 활동량이 많았었는데 암스에 가서 먹는 건 줄지 않았는데 활동량이 확 줄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살이 정말 많이 쪄 있었다. 


그리고 많이 달라진 나의 성격에도 스스로 많이 놀랐다. 이건 나보다도 내 친구들이 많이 느낀 것 같았는데 활발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즉흥적이었던 성격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많아지고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바뀐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고 내가 너무 소심 해진 건 아닐까란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했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늘 먼저 다가가고 연락하고 시간을 보내는 거에 자존심 세우지 않고 아침에 눈떠서 떠나고 싶으면 기차를 타러 갔던 내가 좋아하는 나는 영영 사라진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도 속으로만 이 노래가 좋지라고 생각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조금은 먼저 다가가기를 망설이고 떠나고 싶은 날이어도 나의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미루게 되어버린 게 뭔가 특색 없어진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서 우울해지곤 했다. 심지어 친한 친구가 원래 내가 무지개색 같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회색 인간 같다는 말까지 해서 더더 충격이고 속상했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게 나를 이렇게 까지 바꿀 줄이야!  너무 속상하고 우울했었다. 이때는 그저 달라진 내 모습들에, 그리고 달라진 나를 보는 내 소중한 사람들의 놀란 반응들 때문에 발전한 내 모습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쁘게 변해버린 나에 사로잡혀 우울해했었다. 사실은 다양한 변화가 있었고 또 뭔가를 해내고 꾸준히 노력했고 새로운 것에 적응한 나를 칭찬하고 좋아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었다. 그렇게 정신없고 시차를 맞추며 깨있는 새벽 내내 달라진 모습에 우울해하며 짧은 여름 방학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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