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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Sep 09. 2020

파운데이션

2017


1월부터 8월까지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1월부터 바로 시작된 파운데이션은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을 거쳐 8월까지, 하루하루 다양한 모습의 암스테르담과 함께하며 끝이 났다. 


가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을 지내며 처음 느낀 암스테르담에 대한 감상은, 정말이지 날씨가 감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종 더치 친구들이 "네덜란드 날씨는 하루 안에 사계절이 있지"라고 말하는 걸 체감할 수 있는 날씨들이 많았다. 아침에는 살짝 비가 내리고 바람 부는 쌀쌀한 날의 가을을 마주쳤다가 갑자기 날이 반짝 개서 반팔이 아니고서야 견딜 수 없는 따뜻한 여름을 봤다 싶으면 우박이 내려 머리를 때리며 여름도 아니야 정신 차려 라고 외치기도 하고 그렇게 집에 올 때면 다시 날씨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한 첫 암스테르담에서의 생활은 그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새롭고 다양한 일들로 가득했었다. 


처음 영어로 수업을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기도 했고 생각보다 수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부터 배웠던 영어로 듣고 읽는 것은 괜찮았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업을 듣고 따라가는 것은 괜찮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writing은 정말이지 너무도 어려웠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영어로 글을 잘 쓰기는 여전히 어려운데 처음 시작했을 때 특히 힘들었던 부분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내가 좋아하는 날씨는 해가 반짝이고 바람이 살짝 불어서 기분이 좋고 밖을 거니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햇살 좋은 날이다."라면 영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말은 겨우 "나는 날씨 좋은 날 좋아한다" 였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 내가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영어란 언어를 통해 나올 때는 그게 전혀 논리적이지도, 내가 하고 싶은 말에 가깝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게, 전하고 싶은 말을 또렷하게 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런 부분이 완벽히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 썼던 에세이들을 보면 분명히 좀 더 나아지기는 한 것 같다. 처음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영어는 시나브로 쌓여갔다.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느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늘었고 영어로 쓰는 것을 특히 어려워했던 나의 첨삭을 도와줬던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을 때에도 사실 믿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더 흘러서 뒤돌아 봤을 때 이렇게 조금씩 늘어왔구나 싶었다. 


어디선가 성인이 되어 새로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바로 실력이 좋지 못한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시작하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나도 저 정도를 했으면 좋겠고 저만큼의 성과가 바로 났으면 좋겠고 모든 꾸준히 하면 는다는데 사실 너무 조금씩 쌓여가서 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모든 게 답답하다가 결국은 포기를 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뭔가 차근히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어느 정도 잘하게 될 수 있는데 이미 나는 한국어로는 문장을 쓸 수 있고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다른 언어를 기초부터 단어부터 배워 나간다는 일은 정말이지 답답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새로운 나라에서 생활한 다는 것은 내가 아주 기초부터 쌓아 나아갈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이어서 영어뿐만 아니라 사소한 부분까지 다 새로 적응해야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법, 메트로에서 내리는 법, 스프린터와 메트로를 구분해서 타는 법 등등.. 여러 가지를 새로 적응하고 익히는 건 언어를 아는 나라였어도 어려웠을 텐데 아무리 영어를 잘 쓰는 국가여도 더치어로만 쓰인 것들이 더 많아 배로 더 어려움을 느꼈다. 특히 전화 자동응답기에 더치어만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더치어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기도 했다. 익숙해 지기 위해서 더 열심히 돌아다니고 더 열심히 시도해보고 새로운 걸 배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참 모든 게 즐겁고 신기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익숙한 그냥 학교 등굣길도 그때만큼은 유럽!! 와!! 신기해!! 특별해!! 하며 다녔으니까. 


파운데이션 하면 생각나는 것은 이러한 나의 적응기뿐만 아니라 같이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기억에 남는다. 운이 좋게도 아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1월 파운데이션을 갔기에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유학을 하면서 정말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정말 후회하는 일도 생겼지만 다시 돌아가서 유학할래?라고 물어본다면 정말이지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힘든 거 다시 겪더라도 유학을 한다고 말할 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낯선 타지에 가서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어서 정말이지 문득문득 내가 진짜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유학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생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뭐든 극복할만한 것 같다. 서로 다 익숙지 않은 곳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했던 경험은 따뜻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 그리고 파운데이션이 끝난 후 9월에 암스에서 열리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서! 파운데이션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나는 파운데이션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그때 친해진 본과생들이 다 파운데이션 쉽다고 파운데이션보다 본과가 훨씬 어렵다는 말을 할 때마다 세상에, 저건 진짜 고3에게 공부가 제일 쉬워라고 말하는 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데가 바뀌고 더 어려워졌다고 본과 하는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찡얼댔는데 본과를 시작하자마자 진짜 파데가 쉬웠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정신없지만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시간도 보냈던 파운데이션을 통과하고 한국으로 떠났었다. 이때 일들을 일기에 더 적어뒀다면 쓸 이야기들이 더 많았을 텐데 좀 아쉽긴 하다. 이때 당시 일기에는 뭘 했다고 적었다기보다는 진짜 내 감정을 적어놓았어서 뭘 했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래도 다시 파데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은 시기, 유학생활중에 가장 그냥 재미있기만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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