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er에서 Lover로
이녀석과의 첫 만남은 2023년 Black Friday 즈음 이었다. Ali Express에서 첫 고객에게 3개의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고, 나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사이드 선물이 필요했다. 매인 선물은 미리 작성한 선물 리스트에서 구매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선물이 3개만 있으면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가족이 3명인데 선물이 3명이라니.... 예수님도 동방박사들에게 선물을 3가지나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 가족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있는 선물도 좀 많아도 되지 않을까?
대문자 T인 와이프에게는 무조건 실용적인 것으로, 게임을 찍먹중인 초딩이에게는 추억이 타마고치를 담아놓고 나를 위한 선물에 온우주의 정성을 쏟았다. 수많은 상품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눈에 들어온 이녀석! 아니 이것은 나의 최애 작가인 스티븐 킹옹의 위대한(?) 소설 IT에 나오는 그 문구 아닌가! 마치 Spelling test의 오답같은 이 글자에는 사실 슬픈 사연이 있다. 벌써 슬프다.
막간극 - Loser에서 Lover로
소설 IT의 배경에 되는 메인주 데리에 에디라는 약한 체질을 가진 에디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천식을 앓(는다고 알)고 있었다. 왜소한 체격과 과보호적인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팔에 깁스를 하게 되고 아이들의 거기에 Loser라는 단어를 쓰게된다.
하지만 그는 Loser의 s를 v로 바꿔 Lover로 바꾼다.에디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던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Loser's Club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에 대한 두려움을(Loser) 친구들과의 유대와 사랑(Lover)으로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2주 정도 지나서 물건들이 도착했다. 한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2주만에 도착하다니 생각보다 빨라서 좀 놀랐다. 다행히도 물건도 하자없이 도착했다. 잘 숨겨 놓았다가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포장해서 트리 앞에 놓았다. 완벽했다.
크리스마스 아침, 전날 산타가 되어 아들 녀석이 만든 우유와 쿠키를 먹었더니 얼굴이 좀 부었다. 하지만 아들은 선물에 집중해서 그런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이미 많이 부은 얼굴이라 티가 안나는 걸지도... 잠시 신나는 선물 개봉 타임! 뜯어서 기분 좋은건 역시 선물과 갈비 밖에 없는 것 같다.
드디어 내 비니 개봉! 내 Lover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냉큼 썼다.
"이거 누구꺼야?"
T인 와이프가 물어본다. 내가 쓰고 있으니 내꺼 아닌가? 생각하지만 비니를 넓혀주려고 쓴 걸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 내꺼라고 이야기해준다.
찰나의 침묵이 오갔다.
"이거 오빠 쓰려고 산거지? 절....젊어 보이네..."
그렇다. 와이프는 많이 돌려서 이야기한거다. F와 T의 그 어딘가...한 S쯤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내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뒤로 이 비니를 쓸 때는 글자가 뒤로 가게 쓰거나 글자 부분이 안보이게 접어서 사용하곤 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다.
하지만 조지 R.R. 마틴옹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Winter Is Comming" 이었다. 올해도 다시 겨울이 오고 있었고 나에게는 오직 하나의 절대비니만이 있을 뿐이었다. 올해도 글자를 최대한 숨기면서 비니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구세주같은 책을 만났다. 바로 하루키의 "도시과 그 불확실한 벽" 이었다.
잠시 그 내용을 보자.
옷차림이 바뀌면서 고야스 씨의 체형도 급속히 달라졌습니다. 원래 군살이 없고 마른 편이었는데(적어도 듣기로는 그래요. 제가 처음 뵈었을 때는이미 말랐다고 하긴 힘들었지만 남색 베레모를 쓰고, 턱수염을 기르고, 스커트를 입으면서 급세 살집이 붙어 비만 체형에 가까워졌습니다. 통통해진 거죠. 마치 바뀌 옷차림을 계기로 다른 인격으로 갈아탄 것처럼."
- "도시과 그 불확실한 벽" 404p
여기서 고야스 씨는 시골 마을의 유지였고 아내와 자식을 잃고 쓸쓸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색 베레모와 스커트을 입은 후 밝은 성격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옷차림에 크게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유레카! 그래 이거야. 다행히 옷은 입은 체였기에 알몸으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꺠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남의 옷차림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내가 사람들이 나에게 신경을 쓸거 같은 것을 신경쓸 따름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가!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너무 많은 기준들이 있어서 어떤 시선을 두려워해야 될지도 모르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밴쿠버 아닌가! 여기서 고작 Lover가 적혀있는 비니 하나를 착용하는데 두려워하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Loser를 Lover로 고쳐 썼던 에디에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