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편묵상

시편 96편

시편과 함께하는 시간

시편 96편 새 노래로 여호와께

“너희 열방들이여, 여호와의 두려운 보좌 앞에 거룩한 기쁨으로 경배하라.

주는 오직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라. 그분은 창조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신다.”

_아이작 왓츠(Issac Watts)


하나님의 백성이 찬양하는 것도 모자라 시인은 온 땅까지도 찬양대로 세운다. 하나님의 이름과 구원, 그분의 영광과 기적은 찬양의 주제이자, 온 땅에 전할 선포의 내용이다. 식상한 주제인가? 아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는 만큼 우리의 찬양도 새로워질 수 있다.

‘새 노래’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쉬르 하다쉬’이다. ‘새 노래’라는 표현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7번 사용되었는데(시 33:3, 40:3, 96:1, 98:1, 149:1, 사 42:10), 새로 지어진 노래라는 의미 이상을 함의한다. ‘새롭다’는 말이 단순한 ‘첫 시작’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새롭게 된’이라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같은 어근인 ‘호데쉬’에는 ‘새 달(new moon)’이라는 말로, 사실상 달이 주기적으로 찼다가 기우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월(month)’을 의미한다. 여기서 ‘새롭다’라는 말은 새롭게 시작하는 경험 등을 의미하게 됨을 알 수 있다


_ 『묵상과 설교』, 성서유니온, 2017년 9-10월호, 시편 96편 배경이해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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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비록 존귀하게 창조되기는 했으나(시 8:5) 만물 중에 자기만 노래하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모든 피조물은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가 있다. 그러기에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라고 했다(시 10:20. 비록 인간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간다”라고 했다(시 9:4)

참으로 하나님은 만물의 찬송 속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그의 권위도 알려준다. 이스라엘 시인들은 인간의 찬송을 받으심과 똑같이 만물들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다.


“하늘이 기뻐하고 땅들이 즐거워하고

바다와 거기 가득한 모든 것이 외친다. “


새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낡은 형식적인 이해, 단순한 교리적 반복과 성전에서 습관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가 될 수 없다. 야웨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신앙을 자기 혼자 감격하고 노래 부를 것이 아니라 열방 중의 모든 만민에게 선포하는 선교적인 노래를 불러야 한다. 자신의 신변에 일어나 감격이나 혜택을 노래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노래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에 매수되시는 신이 아니다. 시편 89편 시인이 말하듯 “하늘도 땅도 다 주의 것이요, 세계와 거기에 가득한 것이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다.” 바벨론의 고대 시 문학 속에는 그들의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많은 물질 바침은 물론, 그 신들을 표시하는 언어도 아첨적이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 야웨는 모든 만물의 찬송을 받으시고 또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그중에서도 인간을 돌보시고 자신의 영광과 위엄이 모든 만민에게 퍼져 나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예물과 제물에 좌우되지 않으신다(사 1:111). 그는 세계와 만민을 공정하게 다스리시고 돌보시기 때문에 인간은 다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예배할 수밖에 없다(9절, 시 2:11)


_ 김정준, 『시편명상』, 한국신학연구소, 1996, 298-300쪽,


지금 이 상황에서 찬양이 나오느냐는 반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찬양이 답이라고 힘주어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전 우주적 찬양대를 구성하고 싶은 시인처럼, 마음의 외연을 넓혀 드넓은 찬양의 세계로 나아가 보라.



_김광영목사 묵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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