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인생의 하프타임이다. 전반전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하프 타임은 긴장되고 초조하다. “과연 만회가 가능한 것일까? 게임은 결국 패배로 종결될 것인가?”
시편 102편에는 인생 중년의 증상들이 여과 없이 묘사된다. 괴로운 날이라고 고백한다. 그동안의 인생의 날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간의 허무를 고백한다. 음식 먹을 의욕도 사라졌다고 한다. 마음이 풀처럼 시들었다고 말한다. 광야의 올빼미처럼 황폐한 곳의 부엉이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고독과 소외를 느낀다.
시편 102편은 고난 받는 자가 여호와께 노래하는 탄식 시다. 그 전반부인 1-11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처한 고난의 상황을 깊이 있도록 처절하게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말하면서 인생의 헛됨을 선명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인생의 허무와 고난의 메시지(1-11절)는 기릴 12-28절의 여호와 중심성의 메시지로 나아가기 위한 예비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자기의 고통의 넋두리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괴로움을 호소할 데가 있음을 이 시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만일 1절과 2절에 밝혀진 그의 신앙심이 없었다면, 그는 참으로 “시드는 풀 같고 더움에 삼켜져 버리는 석양 그리자 같이”(11절) 허무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롭고 괴로워도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맛소서. 내게 속히 응답하소서” 하는 애원과 호소의 기도를 할 수 있음이 시인의 자랑이다.
“나의 괴로운 날”도 오히려 인간의 괴로운 사정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을 보여준다. 욥기의 저자가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살아계신 구속주를 만날 수 있고”(욥 19:25), “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로 그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의 얼굴을 친히 볼 수 있음을”(욥 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