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마가복음 매일성경 묵상

막 5장 21~34절



회당장은 예수님의 거듭 간청한다. 다 죽어가는 자기 딸아이를 살려 달라고 하는 간구이다.


마가는 ‘뛰가트리온’ 어린 딸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 이야기 끝부분에서 이 아이의 나이가 12살이라고(42절)고 밝힌다. 마가는 마태와 달리 이 딸아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기술한다.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셔서 죽어가는 딸에게 손을 얹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딸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손을 얹는 행위 자체에 마술적 힘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주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치신다.


그런데, 회당장의 요청대로 그의 집으로 가는 중에 ‘큰 무리’가 예수님 따라가며 그분을 ‘에워싸 밀었다’(24절). 이처럼 많은 사람들 사이에 ‘십이 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그 자신뿐 아니라 그녀가 만지는 것도 부정해지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는 12년 긴 세월 동안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사회적 소외의 고통도 받아 왔던 것이 분명하다. ‘많은 의사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소비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그녀의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그녀가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당하였다는 언급은 당시 환자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노새 똥에서 나오는 곡식알을 먹이는 등 고통스럽고 역겨운 그리고 때로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치료방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여인이 ‘내가 이분의 옷만 만져도 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예수님 뒤에서 그분의 옷을 만진다. 혈루증 앓는 여인이 무엇을 만지든지 그 만진 것도 제의적으로 부정해지기 때문에, 아마도 이 여인은 무리 가운데 끼어 드러나지 않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조심스럽게 만진 것으로 보인다.


여인의 이처럼 은밀한 접근은 바로 앞서 예수님께 간청하였던 회당장의 공개적인 간청 모습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수님은 돌아서서 당신의 옷 만진 자가 누구신지 물으신다. 누군지 몰라서 물으셨을까? 뒤에 이어지는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이 질문은 이 여인의 연약한 믿음을 좀 더 확고해 주시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의 반응은 상식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보기에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미는 상황에서 당신의 옷에 손을 댄 한 사람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문제 제기에 개의치 않으시고 옷을 만진 자를 보시려고 주변을 둘러보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으시는 것을 본 여인은 ‘두려워 떨며 그분께 나아와 엎드려 그분께 모든 사실을 말하였다’. 아마도 그녀의 두려움은 한편으로 자신이 부정한 여인으로서 예수님의 옷을 몰래 만져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이 탄로 나 그 때문에 책망받을 것을 내다본 것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마음으로 가진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을 ‘믿음’이라고 인정하시며, 그녀의 치유를 선언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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