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명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가 남음

매일성경 큐티 나눔

본 단락은 ‘그 무렵에’로 시작된다. 이 기적 사건의 앞의 치유사건과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마가복음 8장 1-10절)


귀먹고 어눌한 자의 치유 결과 예수님의 명령과 달리 무리는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전파한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며 ‘삼일 동안이나’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 주님은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김처럼, 이 굶주린 이방인들도 불쌍히 여기신다. 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신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무리가 광야에서 집에 돌아갈 힘도 없을 정도로 기진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삼일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기대와 열심을 보여준다. 주님은 자신을 그토록 갈망하는 무리의 필요를 직시하고, 그 필요를 채워 주신다.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회의적인 질문이었다. 만일 첫 번째 먹이시는 기적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면,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 벳새다에서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던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그런 메시아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기적의 구체적인 과정은 첫 번째 먹이시는 기적과 거의 일치한다. 그 세부 내용들에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차이점이 있다.


벳새다기적과 관련해서는 ‘열 두 바구니’와 ‘일곱 광주리’ 차이는 특히 주목할만하다.

열두 바구니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 그 속에 가득한 빵은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 잔치의 풍요로움을 보인다. 일곱 광주리의 일곱은 충만 또는 완전의 수로 모든 이방 민족을 상징하고, 일곱 광주리에 가득한 빵은 이방 민족을 위한 메시아 잔치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바구니’는 주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용기인 데 반해, ‘광주리’는 보다 일반적을 사용되던 용기로 이방지역의 용기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의 보고에서 물고기는 언급되지 않고, 6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빵에만 집중된다. 그것은 본 기적을 빵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은 최후의 만찬(14:22)과 좀 더 인상적으로 연고나시 키려는 듯 보인다. 그 결과 물고기에 대한 언급은 부연적인 성경을 띠게 된다. 첫 번째 기적과 달리 여기서는 물고기 마릿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몇 마리’라고 함으로 부차적 성격으로 물고기가 언급된다.

흔히, 먹이신 기적 사건을 ‘오병이어’ ‘칠병이어’로 지칭하는데, 여기서 ‘칠병이어’는 그릇된 것이다. 아마 한글 개역의 ‘두어 마리’(8:7)라는 표현을 ‘둘’로 잘못 이해한 결과인 듯하다.

사천 명 정도 되는 굶주린 무리,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 주님.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즉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 이런 조치는 5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후의 조치와 유사한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신다. 달마누다는 갈리리 서편 해변에 위치한 지역으로 보인다. 그렇게 7:24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이방인 사역이 마무리되고 있다.


●기도

주님~

우리는 경계 속에 머무르지 앓습니까? 주님이 이방인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셨다면 우리 또한 차별 없이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게 하소서. 우리 안의 편견과 아집을 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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