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람들 눈에 제 겉모습 경건해 보일지 모르나, 제 속마음은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과 보혈의 은총으로 채우사 제 겉과 속이 거룩하여지며 진실하신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격언 형식의 비유는 그 내용이 다분히 혁명적이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이 격언은 바리새인들의 전통의 상세한 정결 규례들뿐 아니라 구약 자체의 음식법(레 11장: 17:10-16)을 뿌리째 뒤흔드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해 준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손을 씻고 먹어야 하는 정결 규례와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주님은 그 답변에서 arj는 문제 전반으로, 그리고 부정해짐의 근원 문제로까지 그 논제를 확장하여 충격적인 원리를 선언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격언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무리는 물론 제자들조차도 그 의미를 곧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분께 그 비유에 관하여 물었다’
제자들의 더딘 깨달음에 대한 예수님의 이 책망은 전문맥 6장 25절에서 기술된 마가의 해설 ‘이는 그들이 빵 떼던 일들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다.’를 생각하게 해 준다.
이처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 비유의 의미를 설명하신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그것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배에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배설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18절 하)로 구체적인 의미로 설명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체에만 잠시 영향을 끼칠 뿐, 사람의 본성의 핵심 요소인 ‘마음’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따라서 실제로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
■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
마가는 이 시점에서 중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하셨다(19절 하) 마가의 부연 설명은 매우 혁명적이나 예수님의 답변으로부터 마땅히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다.
그들은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여겼지만, 주님은 오히여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밝혀주신다.
예수님께서 음식법과 관련해서 이처럼 명확한 입장을 취하셨지만, 초대 교회 안에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상당한 긴장과 진통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일상적 삶에 있어서 음식법은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실 베드로조차도 그 원칙을 실제로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을 가졌다.
■ 사람을 더럽히게 하는 것
예수님의 설명은 계속된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을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로 규정하신다.
그 구체적인 예가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수, 방탕, 악한 눈, 비방, 교만, 어리석음이다. 목록의 첫 부분은 십계명 6,7,8,10 계명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큰 정신을 저버리는 행위들이다. 나머지 부분은 신약성경의 다른 악행 목록에서 자주 발견된다.
(롬 1:28-31)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처럼 사람을 실제로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곧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지 먹는 음식이 아니다(23절), 만일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면 마음에서 마땅히 좋은 것들이 나온다.
(마 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지만, 이는 현재 논의의 초점이 아니며, 지금 예수님의 설명에서는 생략되고 있다.
왜 주님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는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세대 속에서 진정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사람의 배로 들어가는 것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대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속의 악한 생각이 악한 행동으로 옮겨져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부정한 자들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힘써 마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