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마지막 나무>가 주는 보존과 연대의 의미
인문학연구소공감 물만골 그림책 읽기 수업
by 인문학연구소공감 김광영 Jun 8. 2025
환경 보전의 문제가 더 이상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것도 사실이다. 멀리 보자면 영국의 산업혁명과 포디즘(Fordism)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시작으로 인류 전체 부(富)의 총량은 해마다 우상향 하는 추세―물론 부의 극심한 양극화는 일단 논외로 하고―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환경이 갈수록 파괴되면서 전 세계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라는 격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큰비가 잦아지고, 태풍이 더 거세지며, 불볕더위와 열대야는 해가 갈수록 역대급 기록을 찍고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 채 편리함이라는 알량한 이유로 이 모든 위기를 그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게다가 연대와 공존의 가치는 진작 무너지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리고 각자도생으로 대표되는 파편화 현상 역시 점점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나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온 세상에 만연해 있다.
2018년 그림책 <어둠을 금지한 임금님(The King Who Banned the Dark)>으로 독자들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린 영국 작가 에밀리 하워스 부스(Emily Haworth-Booth)가 2020년에 지은 그림책 <마지막 나무(The Last Tree)>는, 오늘날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이 가져다주는 편리와 안정감 때문에 일부러 환경을 훼손하고 있는 현 세계에 또 하나의 경고와 함께 그 와중에도 한 가닥 남아있는 희망 또한 제시하고 있다.
옛날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습니다. 사막을 지나, 골짜기를 건너, 산을 넘어, 마침내 나무가 울창한 숲에 다다랐지요. 여름내 나무는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쉴 곳을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어오자, 사람들은 그만 나무의 소중함을 잊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 나무를 베어 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기적인 선택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고 맙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 줄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내자, 이번에는 뜨거운 여름 햇볕을 막아 줄 나무 그늘이 모자랍니다. 사람들은 그늘을 드리울 처마를 만들기 위해 다시 나무를 베어 냅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세찬 바람이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휩쓸고 다니며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지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남아있던 나무마저 모두 베어 내 바람을 막아 줄 높은 장벽을 세웠습니다. 그 많던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이제 작고 연약한 나무 한 그루만 남았습니다. 과연 그들은 마지막 나무를 지켜 낼 수 있을까요?
―출처: 인터넷 서점 <YES24> 홈페이지(www.yes24.com)―
이주한 인간들은 그저 약간 밖이 쌀쌀하다는 이유로 잔 나뭇가지를 꺾어 불을 땐다. 고작 이 정도 가지만 꺾어다 쓰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 잔가지가 없어지자, 비라도 오면 비를 막지 못해 결국 아예 그 숲의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가재도구를 만든다. 그러다 또 여름이 되자 나무 그늘이 없어 뙤약볕을 막지 못해 지붕 처마를 만들어 볕을 가리려고 남은 나무를 또 베어버린다. 이제 또 계절이 바뀌어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자 그 바람을 막으려고 그나마 남은 모든 나무를 다 베어서 커다란 바람막이 장벽을 짓는다. 아주 파리하고 연약한 한 그루의 나무만 빼고 말이다. 이제 이 마을 사람들은 안심한다. 거센 바람도 맞을 필요 없고 강렬한 비도, 땡볕도 모두 방어가 된다. 한데 각자의 집에 아늑하게 틀어박힌 인간들은 서서히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자기가 키운 작물을 누가 도둑질하지나 않을까, 누가 자기를 몰래 엿보지나 않을까 하여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한다. 앞마당에 담벼락을 치고 창문을 꼭꼭 틀어 잠근다. 더 이상 베어 낼 나무가 없게 되자 이제 자기 아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그 파리한 나무마저도 베어오라고 시킨다.
하지만 일개 풀때기나 다름없던 그 나무를 아이들은 차마 건드리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 나무 주변에 모여 그 나무를 가꾸고 씨앗을 모은다. 하지만 어른들의 강압을 못 이긴 아이들은 나무 판때기를 갖다 준다. 어른들은 그걸로 담을 쌓고 창문을 고친다. 그런데 사실 그 판때기는 바로 커다란 바람막이 장벽에서 떼온 것이었다. 그 장벽 틈으로 거센 바람이 들어와 각자 살던 집이 망가진다. 다들 놀라 뛰쳐나와 보니 마지막 나무는 그대로 있고 장벽만 뜯어져 있다. 그 나무는 제법 자랐고 그걸 본 어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 반성하면서 그 커다란 장벽을 다시 허물게 된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모아둔 씨앗을 심고 가꾼다. 이제 아이들이 지켜 낸 그 마지막 나무는 새로운 숲의 첫 번째 나무가 되었다….
어떤가? 이 광경을 보고도 이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여전히 드는가? 우리 주변의 환경을 단지 우리의 편의 때문에 마구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자연환경의 보고인 황령산과 가덕도를 임의로 개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여기저기 신공항을 닥치는 대로 짓고 새만금 갯벌을 훼손시킨 것이 올바른 일이었던가? 당장 물만골만 해도 이 난개발의 횡포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사례가 있지 않던가? 있던 바다도 함부로 메우고 다져서 땅을 넓히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는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후손들이 감당할 것인가? 또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빈부격차와 인간소외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부의 계층별로, 세대별로, 지역별로, 심지어 성별로 이 세상은 계속 쪼개지고 있다. 서로의 이익만 요구하며 삿대질하고 있다. 다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탐욕은 더욱 커져만 간다. 책에 나온 대로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오히려 어린아이 보다 더 못난 짓을 예사로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딱히 탐욕스럽지 않다고 말은 못 하겠다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이의 상대적 순수함이 아닐까? 이 이야기의 아이들은 풀때기같이 연약한 마지막 나무를 베거나 훼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나무 주변에서 서로 놀면서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고 그 씨앗을 모았다. 아이들은 서로 이기적으로 싸우지 않고 같이 협력하면서 나무를 가꾸었다. 서로 분열하여 네 탓 내 탓 적대하고 혐오하는 현실 속에서도 풀뿌리 연대가 여기저기 활성화되고 있다. 이 물만골 주민들의 연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각자도생으로 서로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돕고 살 때, 파괴되고 황폐해진 이 자연도 다시 살리고 소외된 이들도 다시 세상으로 나아올 수 있으리라.
_ 수업참가자 유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