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구달 '희망의 이유'

내 삶을 스쳐지난 것


“너희에게 날들이 남아있는 한,

너희의 힘도 그러할지니”

- 제인구달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 외할머니가 들려준 성경구절 p.33.


<들어가며>

절망의 상황에 가보지 않고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공상일 뿐이다. 제인 구달, 그녀가 ‘희망의 이유’를 말하는 데는 그의 개인사와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의 삶의 자리-이 땅의 전쟁과 온갖 환경파괴로 죽어가는 지구에 대한 절망이 허우적대는 골짜기-를 온몸으로 관통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독교 집안에서 집 뜰의 나무를 살랑거리게 하는 바람만큼이나 실재적인 하나님을 경험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녀가 세상을 알게 되면서 질문한다. “내가 믿어온 대로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시다면 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당하고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이 책은 그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영적순례라고 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첫 페이지의 이 말이 제인구달의 책을 보며 떠올려졌다.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 즉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기록이다. 생존자 중 한 사람이 들려주는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이야기이다.”

나는 제인구달의 이야기 속에서 고통의 수용소를 보았고, 그곳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며 나 자신을 또한 반추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그의 고뇌들은 내가 수없이 대뇌 었던 그것과 맞닿아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

1. 절망 속을 살아가다

제인구달은 12살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후, 16살 무렵에는 예수님과 순교자가 당한 고통을 감내할 만큼 강한 마음을 지녔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루스벨트 말처럼 “사람들은 차 봉지와 같다. 끓는 물에 넣어보기 전에는 얼마나 강한지 결코 알 수 없다.”(p.51)

그녀의 삶에 연단의 ‘끓는 물’은, 첫 남편 ‘휴고’와의 이혼과정이었다. 친밀감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쓴맛과 격렬한 감정적 고통을 경험하고 실패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인생이 전복되기 직전 새로운 동반자 ‘데렉 브라이슨’을 만난다. 하지만 데렉을 암으로 사별하며, 그 과정에 세상으로부터 격리를 경험한다. 신에 대해, 운명에 대해, 이 모든 부당함에 화가 난다. 데렉의 죽음 후 얼마동안 신을 버렸고 세상은 황량해 보였다.(p.205)

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눈을 감고 싶었던 적이 있다. 악몽을 꾸는 것이 현실에서 눈뜨는 것보다 낫다고 싶어 그랬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내 삶을 날줄과 씨줄처럼 얽어매고 있었다. 절망의 상황이 무엇을 말하는지 책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삶을 통해 직면하게 되었다. 황량한 광야에 홀로 버려지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고통, 그 무엇보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뇌의 순간에 서게 했다.

2. 치유의 숲에 들어서다

제인구달은 말한다. “곰베의 숲에서 침팬지들을 쫓아다니고 지켜보며 또 곁에 있으면서 함께 보낸 시간이 자신을 지탱시킨다. 숲 속에서는 죽음이 감춰지지 않고, 침팬지들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쓰라린 상실감의 정화와 운명에 대한 쓸모없는 분노도 가라앉는다.”

나 또한, 그냥 아픔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고통에 대한 의문에 답하기 전에, 고통을 제거하는 것은 고통 속에 있는 자아를 제거한다.”는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을 떠올리며, 그 고통과 직면하고자 성경을 비롯한 고전 및 책 읽기, 글쓰기, 기도하기,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하기, 숲과 공원 산책하기 등 다시 일어날 이유를 찾아갔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게 되고, 부산진역 노숙인 배급소에서 배식봉사와 강연도 하고, 복지관에서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대면하며 이 땅의 청년들의 아픔, 노숙인들의 쓸쓸함, 장애와 노년으로 힘든 현장을 보게 되었다. 나의 고통으로 이 땅의 고통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3. 삶에 대한 세 가지 태도

“정말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파괴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지만 비통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다.”(p.337)

뜨거운 물속에 들어간 茶가 되었을 때,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 그녀의 울림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제인이 말한 ‘3종류의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3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고 재해석을 한다. 파괴의 단계를 넘어야 생존의 단계에서 냉소적인 시선을 경험하고, 그것을 넘어서야만 극복의 단계로 들어서 강한 자가 되어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벌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고치를 만든다. 그것은 파괴를 막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타인과 세상과의 격리이다. 하지만, 안전한 그곳에서 적절한 시기에 탈출하지 못하면 그곳은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다. 고치 안의 자신을 포기하고 그 틈사이로 몸을 새롭게 내놓을 수 있을 때 그렇게 자신을 초월할 때만 날개로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극복의 단계까지 승화되어 나아갈 수 있겠는가? 거대한 위협 속에서 살아남게 하는 그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래도 돌이켜 보면,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절망과 기쁨 속에서도 어떤 커다란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는 믿음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로 길을 잃었던 적은 결코 없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람이, 떠도는 작은 조각을 정확한 길로 부드럽게 밀어주거나 혹은 맹렬하게 불어주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 표류하는 작은 조각이 바로 과거의 나였고, 또한 지금의 나이다.”(pp.21~22)

그녀는 또한, 세상에 대한 3가지 태도를 언급한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세상을 올바로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달렸다. 반면 모든 것이 안전하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적 책임감을 외면한 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나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돕는다.”라고 배워왔다.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p.134)

<나오며>

그녀가 그러했듯-나의 깨어지는 삶의 과정에서도-보이지 않는 은총의 손길이 내 삶이 길을 잃지 않도록 그렇게 밀어주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참으로 신의 은총이다. 힘든 상황 속에 참으로 새로운 삶의 외연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 자신의 삶과 세상의 고통에 대해 책임지는 삶이라는 요청이 내게 남아있다. 어느새 내 주변의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적 경청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걸어온 삶의 과정이 가져온 확장이다. 그들의 눈물이 보이고 외로움이 보인다.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들불은 바람이 불면 온 산을 다 불태우며 더욱 거세게 일어난다. 내 삶이 촛불인지 들불인지는 바람이 불어야만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덮쳐온 거대한 태풍 속에 아직도 꺼지지 않고 살아가는 걸 보니 그 바람은 나를 꺼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은총인지 모르겠다.


_인문학연구소공감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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