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부버 근원어 요약

'나와 너' 그리고 '나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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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관계의 근원어이다. 그것은 상호성과 직접성, 현존성, 그리고 강렬함과 언어 표현의 불가능성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이러한 관계성 안에서만 인간성과 인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성은 ‘나’ 혹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정신은 ‘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사이’에 있다. 나아가서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너’에게 응답하기 위해서 사람은 그의 존재 전체를 바쳐서 관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나와 너’와는 대조적으로 ‘나와 그것’은 조정과 이용의 근원어이다. 그것은 인간 사이(between him)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within a man)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며 상호성이 결여되어 있다. ‘나와 그것’은 주체로서 대상에, 사물에 대한 사람의 간접적인 관계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나와 너’와 ‘나와 그것’은 부버로 하여금 “대화의 삶”과“독백의 삶” 사이의 구별로 나아가게 한다.

‘나와 너’의 관계는 관계의 근원어로서 인간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그 관계는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의 전 존재를 기울여서만 ‘너’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적 ‘나와 너’의 관계는 인간과 세계, 인간과 신의 관계의 구조 속에서도 나타나며 참된 공동체의 근원어도 ‘나와 너’가 발해지는 곳에서만 출현한다.

‘나와 너’의 관계가 가장 뚜렷하고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다. 인간과 인간은 전 인격적인 존재로 관계할 때 실제적인 ‘나와 너’의 만남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와 너’의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을 넣어서 마주칠 때 진정한 ‘너’가 되며 그 때가 바로 진정한 대화관계가 성립한다. 부버의 사상은 이렇게 전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나와 너’의 관계로 들어가기를 요청함으로 비인격화된 지식중심적 교육환경에 문제성을 제기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한 주체는 다른 주체를 만난다. “너라는 말이 사용될 때 화자는 아무것도 자신의 객체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의 삶을 같이 나누는, 자신과 같은 주체를 만나는 것이다. “모든 삶은 참된 만남이다” ‘나’와 ‘그것’과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그 둘은 차등적 관계가 있는 반면, ‘나’와 ‘너’의 관계는 동격의 두 독특한 존재의 대등관계이다. 그 때의 ‘나’는 진정한 나이다.

부버는 ‘나와 너’의 대화관계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가면이나 체면치레나 가식이나 체하는 일 없이, 심지어는 말하지 않고도 진정으로 이해하고 서로 통하는 관계를 말한다. 독일어에는 ‘너’ 혹은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Du’와 ‘Sie’가 있는데, Du는 친밀한 사람들끼리 쓰는 것이고, Sie는 공식적, 외교적인 관계에서 쓰이는 것이다.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나-너’관계가 한 번 성립되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너-너’의 관계에서 ‘나-그것’의 관계로 넘나든다. 또 의식으로나 억지로 ‘너-너’의 관계를 이루려고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너’는 다시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결국 ‘나-그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열어 놓고 진정한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뿐이다. ‘나-너’의 인격적 관계는 경험을 통해서만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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