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푸른 아픔

by 덜자란사십대

초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제게는 정말 기뻤던 여름날이었습니다. 저는 물을 좋아해서 가족 휴가나 놀러 갈 때면 항상 물 있는 곳으로 가자고 졸랐거든요. 그날도 엄청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수영장에 가게 된 겁니다.


수영복, 수영모 이런 짐 같은 거 하나도 안 챙겼어요. 마트에서 즉흥적으로 사가지고 바로 수영장으로 갔던 것 같아요. 음식도 따로 준비 안 하고 갔는데, 뭐 어때요? 물속에서 뛰어놀 생각에 저는 그저 신이 났죠. 제 기억 속 그날의 수영장은 온통 푸른색과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근데 그 행복한 기억 속에 딱 한 가지, 없었던 건 아빠였습니다. 아빠가 술을 좋아하셔서 항상 집에서 취해 계시는 모습만 익숙했던 터라, 그날도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엄마랑 동생, 그리고 저만의 특별한 외출에 마냥 들떠 있었을 뿐이죠.


오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제가 우연히 그날 찍었던 낡은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됐어요. 사진 속 세 명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문득 엄마는 그때 저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렸을 때, 아빠랑 엄마가 항상 싸우던 걸 봐왔던 터라 더욱 그랬죠. 그 시절의 집안 분위기는 늘 긴장감이 돌았고, 싸움 소리가 잦았던 기억이 선명해요.


어쩌면 그날, 엄마는 마지막으로 우리와 함께 여행이라도 가자는 심정으로, 그렇게 즉흥적인 수영장 나들이를 감행하신 건 아닐까.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계획 없는 일탈을 통해 잠시라도 현실의 무게를 잊고 싶었던 엄마의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제게는 그저 '엄마와의 행복한 추억'이었던 그날이, 엄마에게는 푸른 물속에 감춰진 아픔과 절박함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와요.


어린 저는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아픔을 이제야 어렴풋이 헤아리게 돼요. 제가 마냥 즐거웠던 그 여름날의 푸른 수영장 풍경 뒤에는, 어쩌면 엄마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함께 흐르고 있었을 겁니다. 아직 '덜 자란' 제가 그 시절 부모님의 진짜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엔 역부족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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