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아래, 한 줄기 빛

by 덜자란사십대

초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제게는 정말 기뻤던 여름날이었습니다. 저는 물을 좋아해서 가족 휴가나 놀러 갈 때면 항상 물 있는 곳으로 가자고 졸랐거든요. 그날도 엄청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수영장에 가게 된 겁니다.


계곡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투덜투덜하면서 걸어갔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계곡에 도착했을 때는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었죠. 정말 너무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아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작은 물고기들을 잡으려 애쓰고, 물장구를 치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을 거예요.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일이 발생했어요.


계곡이 좀 높은 곳에 있었는데, 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아래 깊은 물이 있는 곳으로 제가 빠져버린 거예요. 높이가 있다 보니 혼자 힘으로는 다시 올라오지도 못했고, 뒤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이라 돌아서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때 엄마는 "물은 별로 안 깊으니까 돌아서 올라오렴" 하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너무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의 깊은 물과 높이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제가 크게 놀랄까 봐, 혹은 본인도 놀란 가슴을 감추려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방이 막힌 듯한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에 한 손이 들어왔어요. 제가 미끄러진 바로 그곳에서, 할머니가 당신의 손을 내밀고 "강아지야, 내 손잡고 올라와" 하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아득했지만, 그 어떤 흔들림 없이 저를 지탱해주는 밧줄 같았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겨우 계곡 위로 올라올 수 있었죠. 그때의 감정은 안도감을 넘어서, 무서움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하나로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죠.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에게 그 순간 할머니의 손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줄 수 있는 든든한 등대와도 같았으니까요.


이제 그 손을 다시 잡을 순 없지만, 계곡 아래에서 내게 내밀어 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은 여전히 내 삶의 든든한 등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슬프고도 따뜻한 기억은,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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