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벽, 얼어붙은 시간

A Winter Dawn, Frozen in Time

by 덜자란사십대

정확히 몇 년도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잘 기억 안 나요. 그냥 엄청 추운 겨울 새벽이었고, 저는 군대에서 병장 달기 얼마 안 남은 상병이었어요. 그날 제가 교대 근무 인솔자였는데, 앞에 서서 걷고 뒤에는 병사 두 명이 따라왔죠. 늘 하던 근무, 늘 보던 풍경이라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 익숙함이 한순간에 박살 날 줄은 몰랐습니다.


근무 교대할 때였어요. 전 근무자랑 현 근무자 사이에 뭔가 심상찮더니, 막 욕설이 오가더니 몸싸움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깜깜한 새벽에 소리 지르고 엉겨 붙으며 난리가 났죠. 제가 인솔자고 고참이니까 당연히 바로 달려가서 말려야 했어요. 머리로는 '아, 지금 가서 말려야 해!' 하는데, 발이 딱 붙어서 안 떨어지는 거 있죠.


그들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싸움 보는 순간, 옛날 기억이 확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맨날 맞고 돈 뺏기고 그랬거든요. 제대로 대항도 못 해보고 무력하게 당했던 그 기억이 저한테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는데, 딱 그게 터져버린 거죠. 군대 새벽에, 후임들이 싸우는 모습 앞에서 고참으로서의 책임감보다 그 옛날 트라우마가 저를 덮쳐버린 거예요.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그냥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렸습니다. 그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초였는지 몇 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제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딱 알았죠, 저는 한없이 초라하고 나약하다는 걸요.


그러다 '비록 늦었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겨우 정신 차리고 뒤늦게 말리러 갔는데, 다행히 제 말에 진정하더라고요.


전 근무자 데리고 부대 복귀하는 길에도, 부대 도착해서도 그들에게 무슨 일 있었냐고 안 물어봤습니다. 후임들한테 뭘 듣고, 제가 걔네들을 혼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서지 못한 제 비겁함이 치욕스러웠고, 후임들 앞에서 선임으로서의 권위를 잃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결국 '아, 피곤하다.' 같은 핑계 대면서 대충 넘어갔어요. 다음 날에야 해당 분대장한테는 그냥 짧게 얘기해줬지만, 자세히 파고들거나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그때 저는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모습이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해요. 해야 할 일을 무서워서 피했고, 그 후에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리하려는 노력도 안 했으니까요. 선임으로서, 인솔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그 겨울 새벽은 지금도 저한테 부끄러움과 깊은 후회로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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