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날이 있습니다. 제게는 정말이지,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난 날이죠.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입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이었어요.
그날도 친구들과 술 마시기로 하고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죠. 그때는 어쩐지 집이 싫었던 건지, 술만 마시면 외박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경기도에 살다 보니 대중교통이 일찍 끊겨서 못 들어온 적도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그게 습관처럼 돼 있었죠.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고 해야 할까요? 평소 저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던 아버지가, 그날따라 왠일인지 나가는 저를 불러 세우고 현관에서 "일찍 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냥 늘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네" 하고 대답하고 집을 나섰어요.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지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날이면 늘 그랬듯이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언제 들어오냐"며 계속 전화를 하셨죠. 저는 처음 한두 번은 받다가,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어요. 그리고는 친구 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잠들었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전화기를 켰는데, 그때 문제가 터진 거예요. 어머니는 물론이고, 동생, 고모를 포함해 정말 엄청난 수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습니다. 순간 '무슨 일이지?' 싶어 심장이 조마조마했어요. 우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동생이 전화를 받자마자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거예요.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하고 다그치니, 옆에 계시던 고모가 전화를 받아서 다급하게 "어디냐, 얼른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죠.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을 때, 고모의 입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영안실에 도착해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저는 완전히 멍했어요. 아무 생각이 없었죠. 그냥 이리와라 하면 가고 저리가라 하면 갔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인지 상황파악을 한다는 거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정말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감정이었어요. 후회, 죄책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따라 "일찍 와라"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는 당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 마지막 말씀이, 제 평생 잊히지 않는 아픔이자 후회가 되어 남아있네요. 평소에는 미워하던 아버지였지만, 그 부재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나이가 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