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기묘한 일들

우연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by 덜자란사십대

잠자리에 든 이환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한산한 공원 길을 걷고 있는데, 목줄을 한 강아지가 주인의 옆에서 뛰어다니는 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아지의 목줄이 끊어지더니, 녀석이 찻길로 냅다 뛰어드는 순간 꿈에서 깼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지독하게 고요했다. 땀이 흥건한 이마를 쓸어내리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것이 단지 생생한 악몽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묘한 불길함까진 씻어낼 수 없었다.


주말이 되자 거짓말처럼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채영이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걷는 공원은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 사고 이후 처음 느끼는, 더없이 소중한 평온함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공원 안쪽 길에서 순식간에 깨졌다. 한 여성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이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여자의 옷차림, 강아지의 털빛. 며칠 전 꿈속의 잔상이 현실 위에 투명하게 겹쳐졌다.


"채영아, 나 이 장면 꿈에서 본 적이 있어."


이환의 낮은 중얼거림에 채영이는 그저 싱겁게 웃었다. "그래? 그랬구나."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데자뷔였겠지만, 이환의 눈은 이미 강아지의 목줄에 못 박혀 있었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그의 신경도 함께 비명을 질렀다.


끊어진다. 곧, 끊어질 거야.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 나갔다. 거의 강아지에게 손이 닿으려는 찰나, 정말 꿈에서처럼 목줄이 '툭' 하고 힘없이 끊어졌다. 찻길로 튀어 나가려던 작은 생명이 이환의 품속으로 굴러 들어왔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강아지의 거친 숨소리와 미세한 떨림. 그것은 꿈이 아닌 실재(實在)였다.


"어떻게 알았어?"


채영이의 놀란 물음에도 이환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주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만족감'이라는 낯선 감각으로 가득 찼다. 내가, 죽을 운명을 바꿨다. 그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 캔을 땄을 때도 손끝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모든 조각이 너무나 정교하게 맞물렸다.


'도대체 뭐였을까, 그 꿈.'


의구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시 꾼 꿈속에서 한 남자의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졌고, 며칠 뒤 퇴근길 골목에서 이환은 그 남자를 마주했다. 말끔한 정장과 꼿꼿한 걸음걸이. 잔인할 정도로 똑같은 풍경이었다.


"어... 저 사람?"


이환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낡은 난간 위, 위태롭게 흔들리는 화분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이번에도 이성은 본능을 앞지르지 못했다. 이환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남자를 덮쳤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깼다. 산산조각 난 화분 조각들이 그들이 방금 서 있던 자리에 흩뿌려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남자를 일으켜 세웠을 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괜찮으세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환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매일 뉴스에서 보던 얼굴, 한명석 의원이었다.


"괜찮으세요? 다치신 곳은..."


"나는 괜찮네. 자네 덕분에 살았어. 정말 고맙네."


한 의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이환의 눈앞에서 터졌다. 번쩍이는 불빛은 마치 그에게 새로운 신분이라도 부여하는 축복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이 선택이 어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렸는지 알지 못한 채, 이환은 그 눈부신 빛의 세례 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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