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꿈의 확신

그늘진 연인의 눈물을 보지 못한 채

by 덜자란사십대

맥주 한 캔을 쥔 채 소파에 앉은 이환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한산한 공원의 강아지, 그리고 골목길의 한명석 의원. 두 사건 모두 꿈속에서 본 장면이 현실이 되었고, 그는 그 궤도를 완벽히 비틀어 놓았다.


"혹시... 미래를 알려주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차가운 맥주 캔을 만지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모든 조각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며 낯선 설렘에 사로잡혔다. 만약 정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비극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다음 날 아침, TV 뉴스 화면을 보던 이환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 어제저녁, 한명석 의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민의 도움으로 사고를 피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시민은 의원님을 몸으로 감싸 위기를 모면하게 해줬다고 하는데요. 현재 저희는 의원님을 구한 '이 시대의 참된 영웅'을 찾고 있습니다.


화면 속 실루엣은 분명 자신이었다. 이환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는 것을 느꼈다. 혼란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변했다. 난데없이 ‘시민 영웅상’을 받게 되었고, 언론은 그를 찬사했다. 회사에서도 그는 더 이상 평범한 과장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덕담을 건넸다.


그 무렵, 이환은 또 하나의 기이한 꿈을 꾸었다. 거창한 사건은 아니었다. 고 부장과 점심을 먹는 자리, 메뉴는 알탕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고민하는 고 부장에게 알탕을 제안했고, 고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기분 좋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며칠 뒤, 현실은 꿈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갔다. 메뉴판을 보며 망설이는 고 부장에게 이환이 툭 던졌다.


"고 부장님, 오늘은 알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탕 드시죠?" "오! 이 과장, 내가 알탕 먹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알았어? 귀신이네, 귀신!"


고 부장은 신기해하며 이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로써 이환은 확신했다. 그의 꿈은 분명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능력은 일상 전반으로 뻗어 나갔다. 이환은 곧 진행될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한 예지몽을 꾸었고, 문서 속 치명적인 결함을 미리 알아챘다. 회의 시간, 모두가 의욕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려는 찰나 이환은 여유롭게 손을 들었다.


"고 부장님, 그 프로젝트 문서 12페이지 하단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환의 지적에 회의실엔 정적이 흘렀다. 확인 결과, 그것은 프로젝트 전체를 좌초시킬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사건 이후 이환은 '독보적인 인재'로 불리며 사내의 전설이 되었다.


자신감은 오만함으로 번졌다. 출근길, 동기 최강호 대리를 마주친 이환이 망설임 없이 물었다.


"강호야, 너 차 사냐? 전기차로, 그것도 흰색?"


최강호는 소스라치게 놀라 걸음을 멈췄다. "어? 어떻게 알았어? 아직 와이프랑 얘기 중이라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이환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운명의 정답지를 쥔 신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삶의 이면에서, 그는 여자친구 채영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찬사와 영웅담에 취해 있는 동안 채영의 연락은 그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랜만에 만난 약속 장소에서도 이환의 머릿속은 온통 새로 꾼 예지몽으로 가득했다. 유모차를 놓친 아이 엄마가 절규하던 꿈. ‘심란하네. 아이는 괜찮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환아, 부모님께서 우리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셔.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 결혼? 아니, 지금 그걸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왜?”


이환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카페 창밖 거리를 훑고 있었다.


“야, 너 지금 무슨 생각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그때였다. 창밖으로 꿈에서 보았던 아이 엄마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이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설명은 해주고 가야지! 나랑 대화하던 중이잖아!” “아, 잠깐만! 중요한 일이야. 이거 놔!”


채영의 팔을 거칠게 뿌리친 이환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보다 빨랐다. 이미 유모차는 내리막길을 구르고 있었고, 거대한 트럭이 유모차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었다.


‘아, 늦었다!’


이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굉음과 함께 멈춰 선 트럭은 유모차를 불과 몇 뼘 앞에 두고 급정거했다. 아이와 엄마는 놀랐을 뿐, 무사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환은 멍하니 서 있었다. 꿈에서는 분명 사고가 났어야 했다. 내가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미래가 비껴갔다는 사실이 그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다. 내 능력이 틀린 건가? 아니면 미래는 저절로도 바뀌는 건가?


혼란 속에 고개를 돌린 이환의 눈에, 카페 창가에 홀로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채영이 들어왔다.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하겠다는 착각에 빠진 사이, 정작 지켜야 할 사람의 마음은 처참하게 부서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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