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핀 계절

은유와 직유

by 밝둡

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것을 알아차린 걸 알려주기 위해 너는 다리를 반대로 꼬았고, 창밖을 보며 기지개를 켠다. 춤을 추는 나무처럼 뻗은 그 두 팔에 졸음이 넝쿨처럼 휘감는다. 창틀에 기대어 그림자를 빌려주던 구름도 가늘어지며 뒤로 물러섰다.

우뚝 서 있는 테이블에 커피잔을 바로 마시지 못하고 돌리며 만졌다. 나의 커피가 흔들린다. 커피의 색을 알아맞히려는 표정을 지어본다. 너가 낸 퀴즈가 커피잔 앞에 놓인 것처럼.

커피는 검정과 갈색을 모두 갖기 위해 스스로를 지운 색 같아,라고 말했다. 너는 비틀어 만든 아이스크림이 제 모습을 찾아 떠나는 것처럼 일어났고, 나는 오답에 사선으로 그어진 빨간 크레파스의 맛을 찾듯 커피잔에 혀를 담갔다. 혀를 타고 목구멍에 파인 갈증의 우물에 쓴맛의 바늘 몇 개가 날아든다. 반드시 맞아야 할 과녁을 향한 움직임으로 근사하게.


빈자리에 무심한 낮의 빛이 머물렀다. 그건 입술에 닿지 않은 커피잔을 피해 모였다. 옆테이블을 삐져나온 꽃잎들이 고개 젓는 선풍기에 날리면 빛을 영롱하고 검게 흔들었다. 나는 벽에 달린 선풍기의 고개가 꺾이는 걸 보다가, 빛을 간지럽히는 그림자를 대여섯 번 멍청하게 본 후, 너의 식은 커피를 마신다. 그것은 투명했고, 정처 없이 달다. 아까 창문 근처에서 뒷걸음쳤던 구름이 불쑥 튀어나와 뱉어 놓은 침처럼 입안에서 떠다녔다.


나의 몸은 기다린다. 그것을 알아차린 걸 알려주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의 손은 바빠졌고, 요란하다. 밀어내는 힘이 잔뜩 담긴 걷는 발소리에 커피숍의 수많은 약속들이 흩어졌다. 문이 열리면 종소리는 눈치 없이 두세 번 댕그렁 소리를 내었다가 틀어막히듯 멈추었다.

오후 여섯 시에 가까워지면 해는 완만한 경사의 산을 찾아 누워 제법 예쁜 노을의 색을 뿜으며 하품한다. 나의 기다리던 몸은 그 빛에 물들어 아름답진 않아도 분위기 있게 반짝인다. 창에 부딪쳐 수백만 갈래로 부서지며 떨어지는 빛의 소리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내일도 기다렸다.


태양은 이제 나에게 호기심을 가졌는지 점차 오래 머무른다. 옆으로 누운 해가 그은 선열이 파닥거리듯 수군거렸다. 나의 몸은 곧 일주일을 견뎌 농익어가기만 한다. 의자는 물렁하고, 유리창은 신맛이 났다. 얼굴이 낯익은 파리 한 마리가 성가시지만, 쫓아낼 방도가 없다. 커피잔의 립스틱 자국 위에 티슈조각이 쩌억 하고 달라붙었다.


나의 몸은 기다리는 걸 멈추고,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다.


너의 배꼽 근처에 기다란 흉터를 가지고 놀던 나의 혀가 너를 부른다. 사거리에서 우측에 있는 문방구에서 난 그 흉터에 딱 들어갈 칼을 하나 샀다. 내 품 안의 칼은 내 몸을 곧게 세우고 당당한 걸음걸이를 만들었다. 나의 몸은 이제 널 더욱 애타게 찾는다.


웅크리고 앉아 너를 도사리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짧아지는 거리의 순간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나의 계획을 알고 있는지, 그저 보기 싫었는지, 은밀하게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너가 떠나가는 모습보다 그들의 눈빛에 보호된 나의 몸은 지금 허탈하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던 즈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그 오빠 지금 언니네 집 앞에 있던데,

그 순간 스산한 계절로 끌려가던 나의 허리는 눈을 떴다.

기다려, 지금 내가 가,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손이 떨렸지만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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