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와 자동차

3. 비유 : 직유와 은유

by JinSim


상담실에서 처음 보호자를 만날 때면 나는 자주 두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아이를 커다란 항아리로 비유해 보자면,

스트레스나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무엇도 담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인지적인 기능도 당연히 발휘되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아이의 발달에서 신체발달, 인지발달, 정서발달이 균형 잡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자동차에 비유해 볼게요.

평균적으로 정상적인 아이를 10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라고 한다면 아이는 7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예요. 발달초기에는 큰 차이를 못 느끼시겠지만, 시간이 수년간 흐른 뒤에는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겠죠? 초기에 적절한 개입으로 70킬로보다는 좀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만, 추월하거나 나란히 달리기는 어렵다고 보셔야 해요.

치료개입이 있다고 70킬로로 달리던 아이가 120,130킬로로 달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가능한 범주 내에서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항아리는 아이가 수용할 수 있는 부피를 말하고,

자동차는 아이의 성장동력의 속도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를 줄이고 부모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바꾼 설명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하지만, 듣는 이의 기준은 나와 또 다르기에 기대 또한 제각각이다.


또 글로 써놓고 보니 뭔가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이런 표현을 하고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수정과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변화를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AI에게 질문을 해본다.


Q. 나의 설명이 듣는 이들에게 좀 더 와 닫고 이해하기 쉽게 수정 가능할까요?
A. 와… 비유 자체는 이미 정말 좋아요. 현장에서 오래 만나온 사람만 할 수 있는 설명이에요.
다만 지금 버전은 <전문가에게는 명확하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약간 차갑게 들릴 위험>이 있어요.
조금만 다듬으면 현실은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마음은 덜 무너지게 만들 수 있어요.


‘현실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마음은 덜 무너지게’라는 문장이 가슴에 쿵 하고 들어온다.


나는 보호자들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답답해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설명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런 내 모습을 이제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상담실은 이미 두려운 공간이다.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확인받으러 오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이 아이는 느립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만 또렷이 전달다면, 그 설명은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마음에 닿기 어렵다.

이제껏 심리상담 전문가랍시고 떠들었던 내 모습이 꼴사납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언어를 좀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저는 아이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적 같은 변화보다는 ‘무너지지 않는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여전히 현실은 쉽지 않고,

발달의 속도도 갑자기 빨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줄 수 있고 아이는 그 기다림 안에서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다.


이제 나는 안다.

설명은 머리로 이해시키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버틸 수 있는 언어로 진실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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