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은유와 직유
열네 살까지 대구 변두리 공장 사택에 살았다. 집에서 먼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파하고 집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원 다니는 게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이고 시골 분위기 물씬 풍기던 그 동네에는 내 또래가 없었다. 공장 마당에서 잡종 강아지 해피와 노닥거리다 싫증 나면 마루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고 그마저도 지겨우면 공장 안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내 딴에는 탐험 같은 거였는데 그리 넓지 않은 공장은 이미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위험한 짓도 많이 했다. 주로 담장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팔이 부러지고, 건물 옥상이나 창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스레트 지붕을 깨 먹고 엄마한테 두드려 맞고 그랬다. 높은 데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 공장 굴뚝에 올라간 일도 있었다. 들키지는 않았지만 만약 어른들이 알았다면 치도곤은 물론이요 집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를 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떨어지면 찌그러진 페트병처럼 박살이 났을지도 모를 만큼 굴뚝은 높았다. 열 살짜리 어린이가 뒤통수가 등에 닿도록 고개를 젖혀야 겨우 끝이 보일 만큼 높은 굴뚝에 올라갈 생각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시멘트 굴뚝에는 어른손 두 뼘쯤의 녹슨 철제 사다리가 밤색 매직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붙어있었다. 점검용이거나 비상용이었을 게다. 차마 발아래를 내려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겨우 조그만 용기가 생겼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공장 지붕이 보이고 굵은 나뭇가지 같은 도로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보이고, 공장 앞 이차선 도로 너머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문득 올라갈 때의 두려움보다 쬐끔 큰 희열이 일어 뱃속이 간지러웠다. 손으로 툭툭 칠 수 있는 미니어처 장난감 같은 동네를 내려보면서 세상을 장악한듯한 조망(眺望)의 설레는 감각을 느꼈다.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친 기억도, 뚜드려 맞은 기억도 없다. 그리고 다시 오른 기억도 없다.
그날부터 내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낯선 곳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처음 가보는 길을 걷다가 해 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따위의 계산도 더는 하지 않았다. 내 발과 내 자전거가 닿을 수 있는 동네를 지도 보듯 훤히 내려봤기 때문이다.
팔조령 휴게소는 가창과 청도 경계의 봉화산 정상에 있다. 정상이랬자 해발 사백칠십 미터 남짓이다. 팔조령 터널 진입 전 신호등에서 산방향으로 좌회전하고 구불구불 이차선 옛 국도를 느린 속도로 오분 남짓 오르면 휴게소가 있다. 마지막 커브를 돌아 완만한 경사로를 백 미터쯤 내려가면 주차장이 보이고 난간에서 청도군 이서면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내가 팔조령을 자주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일상 반경 안에서 차로 이삼십 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곳이라서다.
내 일상이 고인곳에서 멀어지는 감각, 내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힌 곳을 내려다보는 감각,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조망하는 감각이 필요할 때 나는 팔조령으로 간다.
높은 곳에 오르면 굽어볼 수 있어 좋다. 조금 전까지 내가 헤매던 미로를 위에서 내려보는 느낌. 사진의 왼쪽길은 내가 팔조령으로 올라왔던 길이다. 오른쪽은 청도로 내려가는 길. 한계령, 대관령과는 댈 바 없는 낮은 산마루. 이 나이의 내 위치 같다. 겨우 여기 오려고 구불 비틀 용을 썼던가. 예까지라도 와서 다행인가. 닿고자 하는 곳까지는 갈 수나 있을까. 저기 산 아래 마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두 갈래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도 한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어느 골목도 담장 모퉁이를 돌면 안 보이게 숨겨진 길이 있을 수 있고, 탄탄대로처럼 보이는 큰길도 난데없이 막히기도 하는 게 사람살이다. 인생은 미로 찾기다.
잠시라도, 미로에서 빠져나와 조망하는 기분, 굴뚝 위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던 그 기분을 가지려고, 나는 높은 곳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