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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고,가르고,나아가는

자유

by 밝둡

마음 없이 사는 마음을 마음대로 둔 채로 산다는 건, 마음먹고 사는 마음을 지키고자 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처음 만난 거리를 걸으며, 호기심을 뺀 걸음과 눈으로 거닐다 보면, 길은 길어지고 순환되어 어느새 익숙해진다. 넋 빠진 발자국을 생각 없이 다시 밟는다. 보통 우리는 아는 길로 걷는다. 아는 카페로 들어가서 마셔보았던 메뉴를 시키고, 아쉽지만 그럭저럭의 쿠키를 먹는다. 안전을 추구하는 마음은, 익숙함의 길을 낡게 만든다. 그 길이 아니고서는 식당을 가지 못하게 되고, 병원을 놓치게 되며, 저녁노을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선택을 당하는 삶에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삶으로 흘러간다. 오래 신은 기능을 잃은 신발을 신고 걷는다.


선택의 이분법에 갇힌 단순하고 지루한 낮에, 허리를 세우고 앞만 보며 걷는 한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의 손에는 이미 낮에 먹을 약봉지가 하나 들려있고, 눈가에는 밤을 기다리는 피곤함이 번져있다. 그의 루틴은 단순함이 엮여있는 복잡함이었다. 복잡하게 엮인 단순함의 반복이었다. 그 남자의 손목은 놓쳐버릴 까 두려운 반복의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차곡차곡 세웠던 어떤 이의 허리뼈다. 그의 삶은 정돈되어 보였고, 성실해 보였으며, 적당히 해가 비치는 개울가다. 그저 흘러가는 물들의 연주다. 죽음은 있지만, 낭만은 없다.


그 남자는 이제 남쪽으로 뛰기 시작한다. 꼭 딛었던 징검다리를 하나를 외면해 보고, 땅바닥에서 한 줌 주은 모래를 개울에 뿌린다. 바다를 향해 달리고, 파도를 마신다. 높은 키의 파도가 그를 덮쳤고, 그는 하나의 배가되었다. 망망대해 저 멀리 빛을 향해 꿈틀거린다. 파도가 배를 껴안았다. 해는 깃발을 반짝였고, 빛이 바다 위에 희미한 길을 안내했다. 하늘이 웃는다. 구름이 박수를 친다. 갈매기가 춤을 춘다. 눈물이 낭만처럼 흐른다. 행복하다. 사랑의 힘이 섬하나로 몰려든다. 아침이 몰려들었고, 따스한 밤이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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