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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by 밝둡

아버지께서 생각나셨는지, 그 생각을 신기하게 느끼셨는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한 당신의 모습을 재밌어하는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니? 생각해봐, 어때? 이상하지?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놀이처럼 인상을 찡그리며 시도해 본다. 평화로운 대낮의 볕이 마루의 언저리를 비추는 한가로운 날이었다. 머리는 그것의 시도만으로도 미궁 속으로 빠진다. 배워야 가능한 생각의 지점과는 다른 모호함이다. 그것은 생각만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그 무엇도 없는 것, 그런 상태. 나도 신기하다는 얼굴로 아버지를 보고 웃는다. 우아 신기해, 아빠, 왜 그런 생각이 어렵고 신기하지? 너무 웃긴다. 아버지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닿을 수 없는 차원의 벽을 경험한다. 상상의 형상화의 과정에서 밀려나듯 부딪쳐버리는 그것의 한계성을 경험한다. 아버지의 나이에서도 그토록 미지의 것인데, 할아버지가 되면 가능해질까?라고 중학생은 생각했다. 지금 아버지는 그것의 상태에 계신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아무것도 없음의 상황과, 그 상태의 연속. 얼굴을 찡그리며 도착하려 했던 그것은, 만져지는 시간의 길을 타고 모든 감정들과의 완벽한 작별인사와 함께 찾아들었다. 추억은 시간 안에서 맴돌았다. 의식 속의 시간은 미래에 있지 않았다. 뒤로 걸으며 고개를 돌려볼 때, 진실의 비웃음처럼 통과한 것을 본다. 시간이 어깨동무를 하며 왔고 거울처럼 멀어졌다. 예상의 적중을 결과의 문을 열며 알 수 있듯, 출근길 현관에서 본 개미 한 마리를, 퇴근 후 방문 앞에서 만났을 때 느낄 우월감 따위가 시간의 껍질로 만든 옷을 입혀주진 않는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추억의 언덕 위로 성큼 흘러가, 초대장을 뿌리지 않는다. 그것을 궁금해하던 아버지는 갸우뚱거리는 표정으로 질문 속으로 녹아들었다. 존재가 생명의 불을 피워 무존재의 증거를 시도하려 팔딱거렸고, 시간의 없음을 추억처럼 입가에 흐른다. 지금도 얼굴을 찡그려보고 그때의 아버지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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