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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by 밝둡

공간이 한층 아래로 움푹 꺼진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곳이 준비되어 있다. 노란 할로겐 조명이 고개를 든다. 습한 공기가 마티니 한잔에 밖으로 빠져나간다. 미니스커트 차림새의 긴 다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 남자들을 가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느 구석진 곳으로 사라지듯 들어갔다. 조명뒤의 어두움이 침착함을 찾고 다시 어두워지자, 웅크리고 있던 소파가 옆으로 누어 자리를 만들었다. 발에 걸릴까 조심히 걷던 이들은 그 소파에 앉았고, 어떤 이는 홀로 서 있던 의자 위에 앉는다. 둥근 원형 테이블 위에 시끌벅적한 네 명이 자리를 차지한다. 한 사람의 손에는 달아 보이는 케이크가 있었고, 손목의 팔찌가 잠깐 반짝였다. 천장에 달라붙어 기어 다니던 스피커가 박쥐처럼 섰다. 입을 쩍 벌리고, 노래를 틀었다. 사람들의 대화를 가로막지 않는 자상함의 볼륨이다. 멀리서 빛이 세로로 나타나, 멋지게 갈리더니, 사람이 들어온다. 우리가 적응했던 어둠이 그에게 다가가 낯설음의 환대를 한다. 어깨를 웅크린 채 걷던 그 사람의 허리가 점점 곧아진다. 그 사람은 맥주 한 캔을 따고, 갈증을 피해 들어온 사람인 마냥 벌컥 마셨다. 그런 와중 어두운 스테이지위에 숨듯 걸어 들어오는 네 명이 있다. 익숙함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비장함이 묻어있다. 스테이지에서 한 발을 떼면 곧 소파에 묻히듯 앉을 듯한 사람이 다시 스테이지에 오르며, 긴 앞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고, 어깨를 원형으로 돌리며 몸을 푼다. 사람들이 조금 더 모였고, 닮지 않은 각각의 자리 위에는 술과 음식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다시 나타나더니 지상으로 사라졌다. 스테이지위에서 시동을 걸듯 악기들이 트림을 하기 시작한다. 틱틱 거리는 소리도 들렸고, 웅웅 대는 소리들, 징징 거렸고, 쟁쟁 거렸다. 붕붕 거리다가 방방 소리도 나와본다. 맥주캔 하나를 벌컥 마셨던 사람이 벽에 기댄 채 박수를 쳤다. 목의 갈증만큼, 귀의 갈증이 있던 남자는, 성급함을 가졌나 보다. 곳곳에서 빛의 문이 생기고, 대화들이 그곳을 통해 오고 갔다. 어둠이 그것들을 빨아들였고, 다른 어둠으로 흘려보낸다. 고백의 대화들이 벽을 타고 기어 다닌다. 하루동안 쌓인 인내심이 어둠 속으로 잠을 자러 갔다. 시동을 알리던 악기를 든 네 명의 사람이, 포즈를 취했다. 그쯔음 동그랗게 뚫리는 빛 속에서 누군가 나왔고, 그 네 명 사이에 섰다.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음식이 바로 흘러내려간다. 안내 없는 인트로가 시작되고, 시작은 베이스다. 소리를 의심하듯 자기 왼쪽귀를 쳐다보려고 노력하는듯한 남자의 눈 끝이 매력적이다. 베이스 뒤에 나머지 것들이 합세를 했다. 그들의 앞에는 트럼펫, 콘트라베이스가 다리 벌린 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고, 드러머의 생기발랄함이 이질적이었지만, 꽤 명료하듯 푸근했다. 알지 못하는 곡들을 들으며, 사색에 빠진다. 외워지지 않는 멜로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보컬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제 낮에 했던 통화의 내용에 대해서 기억하려 애썼다. 모두의 악기소리들이 벽 귀퉁이에 모여서, 춤을 추었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등으로 박수를 쳤고, 웃음소리로 끄덕거렸다. 맥주캔의 남자의 손에는 이제 생수 하나가 있다. 연주는 앞에서 끊어지고, 뒤에서 이어졌으며, 중간에서 다시 몸을 일으킨다. 연주자들의 고개는 조금씩 꺾여지고 있고, 지나치게 부드러웠던 목소리는 어둠에 코팅이 되어 밤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 틈에 묻혀 음악을 듣던 나는 이제 슬슬 배가 부르다. 앞에 놓여있던 맥주 하나를 토막 내어 마신 탓인지, 소변도 마려웠다. 귓가에는 이제 커다란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벽에서 습기가 차올랐고, 비어 있는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는다.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고, 빛이 갈라지기 시작한 곳을 향해 걷는다. 바닥에 깔려 있는 사람들의 발을 피해, 볼일 다 본 사람의 모습으로, 미안한 마음의 사람의 얼굴로 음악의 중간을 걸치고 간주를 밟고 걷는다. 빛이 갈린다. 몸에 묻는 음악이 후두둑 떨어졌다. 사람들의 추억이 신발바닥에서 끈적거렸다. 바깥에서 또 하나의 빛이 갈린다. 나는 어정쩡한 몸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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