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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밑에서 조금 더 위로

by 밝둡

계천 옆을 걷는다. 아침의 앞은 얌전히 지나쳤고, 출근길들의 덩어리가 끝날즈음의 시간, 가고 싶은 곳을 들키지 않을 걸음걸이로, 계천 옆을 걷는다. 계절의 코를 찌르는 열기를 먹은 들꽃들의 살랑임과 큰 키의 잡초들 사이로 물들은 숨어 흘렀다. 여러 가지의 녹색들 사이에, 물들이 흐르는 소리가 젖어들었고, 미친년 빨래 말리듯 하얀 천 하나가 꼬깃거리듯 우아하게, 나타났다. 정확한 이름을 모르는 나는, 새라고 불러본다. 뭔가 접두어 두세 개쯤 있을 법 한 그러한 새다. 눈가에 한복을 연상시키는 고운 선의 노란색이 얼핏 보였다. 새는 흐르는 바람 위를 미끄러지며 나타났다. 공기 위에 배를 깔고, 날개를 얹어보는 새는 걷는 우리를 의식하고 있다. 자신이 그토록 우아한 움직임을 지닌 것을, 지금 알아차린 듯한 표정으로 내 옆을 지나쳤다. 계천을 덮고 있는 물들의 바로 위를 그 새는 난다. 새의 발끝에 공기로 이루어진 명검 한 자루가 쥐어졌다. 물 위를 나는 새는 낮게 날고 있었고, 계천을 덮고 있던 상처 없이 갈라지는 물들은 배란기 여자의 다리처럼 아름답게 벌려졌다. 순간 계천을 알고 있던 주변의 길들이 낮게 웃었고, 하늘은 지저귄다. 새가 녹색사이로 침대처럼 누워 사라진다. 새는 가위질을 하며 꿈길을 찾아갔다.


기다리던 길은, 우리를 제치고 새로운 길을 소개했다. 설익은 살구를 떨구는 나무가 있었고, 터져 나온 신맛이 쌓여 있는 길가의 벤치에는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오랜 발자국이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이뻤다.


한강 위를 튕기듯 날아다니는 새떼를 본다. 물 위를 새긴 무늬 같은 것이 움직이고, 무늬 아닌 듯한 것도 움직인다. 모두가 새고, 난다. 한 마리가 껑충 뛰고 물 위의 스프링을 팅구면, 또 한 마리가 그 뒤를 뛰었다. 물 위의 무늬들이 음악이 되어, 새떼들을 지휘한다. 어디론가로 향하는 하늘 위의 그들이, 오늘은 물 위에서 그런 것을 했다. 캥거루처럼 뛰고, 두더지처럼 물안으로 들어간다. 평화로워 보였다.


길은 계속 이어졌다. 어딘가에서 돌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보며, 기대감에 더 걷게 되었고, 누군가의 땀이 베인 등을 보며, 서성인다.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찾은 길의 모양새를 재밌다고 생각해 보았다.


새는 가위질을 하며 하늘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구름이 흩어지며 나른함을 뿌렸다.

길 위에 우리가 놓였고, 걸었다. 잡은 손에 나른함이 떨어졌고, 우린 잠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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