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딱지

많은 걸 해내느라 버거운 나에게

by 김연의

나는 워킹맘인 내가 좋다. 일도, 육아도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내가 자랑스러워 블로그 이름도 '워킹맘의 산책'으로 지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내게 갖다붙인 '워킹맘'이라는 꼬리표가 왠지 모르게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타이틀 안에 스스로 갇혀버린 느낌이랄까. 뭔가 늘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고, 회사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항상 미안한, 이리저리 치이며 허둥대는 아우라를 지닌 '워킹맘'의 이미지 때문인지, 슈퍼우먼처럼 모든 걸 감내해내는 독한 여자가 된 것만 같다. 스스로 그런 내 모습을 은연중에 자랑스러워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나 혼자 그렇게 고생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물론 현실이 그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워킹맘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낸 심리적인 반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출근하면 그냥 직장인인거고, 집에서 아이들과 있을 때는 그냥 엄마인건데, 굳이 '일하는 엄마'라는 이름을 내세워야 할까? 워킹대디, 직장대디라는 말은 잘 안 쓰면서, 워킹맘, 직장맘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건 사실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과 육아가 완전히 100% 분리될 수는 없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남자들도 육아 휴직을 쓰고 가사나 육아를 전담하기도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몫인 이상, 직장생활과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모성'을 완벽히 떼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게 억울하다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디서든 온전하게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일터에서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는 일 때문에 뭔가 2% 부족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때, 뭔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도저히 여력이 없어 포기하게 될 때, 그리고 그것이 마치 핸디캡인 것처럼 눈치가 보이고 죄책감이 밀려올 때, 이 워킹맘 타이틀의 무게가 한층 무겁다.

이런 얘기를 할 때 주변의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마."

물론 이 무게를 짊어지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완벽해지려고 애쓸 때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지만, 처음부터 내게 '최선'인 기준을 딱 정해두고 그 안에서 스스로 만족한다면 오히려 워킹맘인 게 편할 때도 있다. 내가 마음 편한 적정 수준 내에서, 일이 하기 싫을 때는 아이들 핑계를 댈 수 있고, 육아가 버거울 때는 일을 핑계삼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잘 클 것이고, 회사는 나 없이도 잘 굴러간다. 내 마음만 편하면 될 일이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나 혼자라면 거뜬히 해냈을 일들을, 엄마로서 반드시 해주고 싶은 것들을, 주변의 상황과 여건때문에 적당히 타협하는 게 못 견디게 싫은 나 같은 사람은, 그냥 계속 이리저리 부대끼며 괴롭다.

그러니까 워킹맘 딱지가 문제가 아니다. 워킹맘이라는 이름에 힘을 잔뜩 실어 나를 짓누르는 게 문제다. 이런 걸 슈퍼우먼 컴플렉스라고 하려나.

나처럼 뭐든지 다 완벽하게 해내느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워킹맘에게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두 가지다. 1)남이 뭐라든, 나만의 '완벽한'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것, 그리고 2)그 중 한 역할을 할 때는 그 하나에 오롯이 전념하는 것.

두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지금의 나는 분명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기준은 여전히 예전의 나에 머물러 있다. 회사 일은 싱글 때처럼 욕심을 내느라 허덕허덕하고, 아이들과 있을 때는 육아휴직 때처럼 직접 다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나를 못살게 군다. 무엇보다 비교잣대가 너무 많다. 회사에서는 옆 팀 남자 팀장과 경쟁하고, 일 잘 하는 싱글 선배가 부러우며, 한편으로는 착실하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 때문에 조바심이 난다. SNS에 떠 있는 다른 이들의 삶도 신경쓰인다. 누구는 자연에 가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1년 살기를 하고, 누구는 자기만의 멋진 사업을 꾸려 어엿한 대표가 되었다. 남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지금의 내 하루가 더 버겁다. 하루 24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 안에 회사 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며 살림도 돌보고 그 모든 것을 잘 해내기 위해 체력과 정신 무장도 해야하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사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나쁘지 않다. 예전처럼 밤을 새워가며 보고서를 만들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세끼 이유식 직접 만들어 먹이는 유난을 떨 기력도 없지만, 지금의 내 삶에 충실하게, 나만의 기준을 다시금 잡아야 한다. 일은 딱 근무시간 내에 마칠 것, 퇴근 후 9시까지는 아이들에게 전념할 것, 잠 자기 직전과 아침 출근 전에는 나를 위한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질 것. 이런 것들이 지금의 삶 속에서 '완벽한' 나만의 루틴이다. 그 이상을 하려고 하면 분명 탈이 날 것이다. 지금의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자.

또 하나는 집중이다. 일 할 때 아이들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어린이집에서 문자가 오면 봐야 하고, 갑자기 열이 난다고 연락오면 데리고 집에 가야 한다. 큰 아이 학교 준비, 학습지 선생님 연락, 시시때때로 남편과 상의해야 할 것들이 근무 중에도 치고 들어온다. 가장 큰 문제는 출근시간이다. 8시에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으면 10분, 20분 훌쩍 지나버린다. 30분 넘게 늦어지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다. 주변 사람들은 '애들 때문에 그러려니' 하지만 그 시선 역시 따갑다. 출근이 늦었으니 퇴근도 늦어진다. 늦게 데리러 가면 아이들은 피곤해하고, 루틴이 깨져 잠도 늦게 잔다. 저녁 시간도 자연히 엉망이 된다. 워킹맘이라고 해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동시에 돌보는 건 아니므로, 일할 때는 일을 하고,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이들만 돌보며, 나를 위한 시간에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시간의 경계를 잘 지키되, 각각의 시간에는 서로 방해되지 않게 철저히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근 시간을 지키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근무시간 중에는 어린이집에서 온 문자도 가급적 보지 않고(급한 건 전화가 오니까), 집에 가서는 회사 메신저를 꺼둔다. 당연히 친구와의 전화 통화나 SNS도 잠시 미룬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해야하는 일의 가짓수가 많으면 집중하기 어렵다. 내 형편과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범위와 수준을 정했다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법이다. 내 시간은 내 것이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내 시간의 주인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정한 하루의 일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주인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워킹맘 딱지는 내가 떼고 싶다고 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은 다 워킹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건 그냥 사람들이 편의상 붙인 역할의 이름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그 이름에 얼마나 무게를 실어 내 정체성을 담느냐다. 뭔가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워킹맘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이 때문에, 회사 때문에를 변명처럼 일삼지는 않았는지, 힘에 부칠 때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워킹맘의 무게를 운운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당연히 힘들 수 있고,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근데 그건 워킹맘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내 삶의 굴곡인 것이다. 아이가 없었어도 힘든 일은 있을 것이고, 일을 안 하더라도 스트레스는 받을 수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버거운 것들을 그때그때 이겨내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 삶에 가장 충실한 방법이다. 워킹맘이 아니라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그리고 나로서.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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