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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Dec 02. 2021

초심의 기록

팀장 1년차를 마치며


팀장이 된 지 딱 1년이 지났다. 말도 안되지만 이제 팀장 2년차다. 신임 딱지를 뗀다는 소리다. 누가 붙여준 적도 없는 딱지지만 막상 뗀다 생각하니 왜이리 부담스러운지. 지난 1년간 팀장 노릇을 제대로 한 건가, 성과는 있었나, 뭐가 가장 부족했나.. 차분히 앉아 고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그리고 다음 해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대로 그냥 덜컥 이어가도 되는건지 모르겠는 이 시점에 필요한 건 바로, 기록이다. 


신입생, 신입사원, 신임 팀장.. 1년차는 뭐든지 다 약간 어설프다. 일도 익숙하지 않고, 다 아는 것 같지만 하나도 모르고, 불타는 열정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잘 하려고 할수록 좌절만 깊어진다. 딱히 누가 1년차에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지도 않거니와, 도움을 받는다 해도 소화시킬 깜냥이 안 된다. 물론 주변에서 '1년차니까'라고 봐줄 수 있는 기간도 지금 뿐이다. 이래저래 뭔가 햇병아리같은 어설픈 이 상황에서 딱 하나, 그들만의 강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초심'이 아닐까 한다. 


초심, 말 그대로 처음의 마음이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마음. 뭔가 잘 해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뭐든지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같은 것들이다. 숱한 마음들 중에 오로지 이 첫 마음만 이름이 있다. (중간심, 말심은 없다!) 그렇게 처음에는 우리 모두가 유난스럽게 열정적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놀라울만큼 까맣게 잊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내게 머물러있는 그 짧은 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기록해야 한다. 초심의 열정으로 흡수한 여러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많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첫 1년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초심의 첫번째 증상(?)은 스펀지와 같은 흡수력이다. 잘 하고 싶은 만큼 온갖 정보들에 눈독을 들인다. 팀장이 된 직후부터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 리더가 된 당신에게] [나는 팀장이다] [리더의 용기] [리더의 그릇] [리더의 언어].. 등 리더십 책과 코칭 관련된 책, 조직문화 관련된 책, 그리고 각종 자기계발서에서 관계에 관한, 리더십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적어두곤 했다. 1년에 걸쳐 회사에서 제공한 팀장 교육 때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다. 제 시간에 출석은 물론(출석도 안하는 팀장이 대부분이다), 강사의 말은 빼곡히 필기하고, 액션 플랜도 빠짐없이 제출했다. 신임팀장이니까, 초심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좋은 팀장, 좋은 리더, 좋은 상사, 좋은 선배가 되는 길은 지천에 깔려있었다. 리더십 책은 수백권이 넘고, 지나가는 선배만 붙잡고 물어봐도 모두들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코치 자격증까지 딴 사람이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보다 빠삭하다는 얘기다. 준비된 팀장,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거없는 자신감, 그것이 초심의 두번째 증상이다. 과한 열정으로 이것저것 흡수하다보면 왠지 배운대로 해야할 것만 같다.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팀의 목적과 방향성을 명확히 할 것, 주장선수가 아닌 감독의 역할을 할 것, 팀원들이 일을 통해 성장하도록 할 것, 공명정대하게 평가하고 수시로 피드백할 것, 일은 수직적으로 소통은 수평적으로 할 것.. 다 너무도 맞는 말이라 배운대로만 하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달랐다. 팀원들은 내 맘같지 않고, 회사는 냉혹할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했다. 성과도 내면서도 즐겁고 활기찬 팀 분위기를 만드는 건 지나친 이상에 가까웠다. 다른 팀장들이 몰라서, 무능해서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마침내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심이 가지는 마지막 힘은, 처음이니까 가능한 막무가내의 실행력이 아닐까 싶다. 잘 모르니까 무작정, 재보지 않고, 결과도 모른 채 일단 해보는 것. 그렇게 설사 열심히 죽을 쑨다 하더라도 그건 나만의 경험으로 남는다. 1년차니까 성과가 좀 안 나도, 회의 때 헛소리만 지껄여도 넘어가주니까. 심지어 팀원들조차도 처음이라 버벅거리는 팀장을 안쓰럽게 봐준다. 그러니까 잘 모른다고, 안 해봤다고 쭈뼛거릴 시간에 일단 한번 들이밀어야 한다. 설사 틀리더라도 '처음이라서요'가 먹히는 유일한 때니까 말이다. 


팀장이 마주하는 현실은 매일, 매 순간 다르다. 업무에 따라, 팀원들에 따라 팀장이 마주한 갈등과 해결해야 하는 일들도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팀장 자신의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서도 수천가지의 서로 다른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누구도 내게 딱 맞는 조언을 해줄 수 없으며, 그 어떤 책에서도 지금 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리더십을 찾기 어렵다. 그저 스펀지처럼 흡수한 온갖 지식과 정보들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부딪히며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잘 해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며 지식을 쌓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부딪히며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초심이 내게 주는 기회이자, 하루 빨리 초보 딱지를 뗄 수 있는 길이다. 아니 어쩌면, 수년차 수십년차가 된 후에도 이런 마음으로 임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리더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팀장 1년차의 이 기록이 훗날 초심을 잃고 휘청이는 나에게,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인 초보 팀장에게 반가운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 

어쨌거나 초심은, 진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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