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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Dec 10. 2021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연말, 승진심사를 대하는 팀장의 자세

팀장이 되고보니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워진다. 누구를 흉 보는 것도, 회사의 방침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것도 다 조심스럽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인사'에 관한 부분이다. 평가 결과나 승진, 연봉, 포상과 같은, 직장인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부분이 팀장으로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그래서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연말이 되어 인사고과와 승진심사 시즌이 되자 뭔가 회사 전체에 긴장감이 감돈다. 가장 큰 변화는 오프라인에서의 대화는 줄고, 반면에 온라인, 특히 익명 게시판이 지나치게 떠들썩해진다는 점이다. 평가를 받는 사람은 괜히 헛소리했다가 밉보일까봐, 평가를 하는 사람은 괜히 입 잘못 놀려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서다. 1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충실하게 성과를 냈던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지만, 실제로 일을 잘 했든 못 했든 상관없이 모두가 승진은 하고 싶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그러나 회사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고, 특히 성과 중심적인 빡센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에서는 평가에 매우 야박하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에서 가장 머리가 아픈 사람들은 바로 팀장들이다. 똑같이 열심히 일했는데 누구는 좋은 평가를, 누구는 나쁜 평가를 주어야만 하는 이 못된 시스템 속에서, 나름대로의 논리와 근거를 열심히 만들어 팀원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웃는 팀원과는 함께 기뻐하고 칭찬하며, 우는 팀원은 달래고 독려하며 진땀을 빼야 하는 자리, 그게 팀장이다. 

인사평가는 1년에 두 번 -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되지만, 하반기에는 혹독한 절차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승진심사다. 많은 기업에서 직급을 폐지하고 서로를 매니저, 파트너, 혹은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고도 들었지만, 그런 판을 뒤엎는 데에 상당히 보수적인 대한민국 기업이라면 아직도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이름 뒤에 따라오는 이 직급이 뭐라고. 승진을 하면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고, 못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꼭 내가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누가누가 승진을 했나, 못 했나는 전사의 핫이슈다. 어쩌면 승진은 직장생활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다음 주면 승진심사 결과가 공표된다. 우리 팀원 중에서도 누구는 승진을 하고, 누구는 못 한다. 승진을 하는 친구들은 기쁜 연말연시를 보낼 것이고, 못 한 친구들은 씁쓸하고 짜증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잘 했건, 못 했건 간에 섭섭하고 속상한 건 당연하다. 그런 상태에서 자기 반성과 재기의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열심히 일할 맛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기분도 안 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니 팀장들이 서로 승진 대상자들은 팀원으로 안 받겠다고 할 수 밖에. 

팀장으로서 욕 먹을 각오는 되어있지만, 한편으론 억울하다. 물론 내가 더욱 나서서 그 팀원의 공적을 설파하고 어떻게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승진 심사의 현장까지 찾아가 이 한 몸을 불살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팀장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팀장의 역할은 팀의 성과에 기여한 팀원들의 공적을 있는 그대로(+살짝 드레싱만 쳐서) 윗선에 보고하는 것 까지다. 그 이후 그 팀원의 과거 이력과 그 동안 회사에 기여한 부분,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요소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부서장과 경영진이 직접 의사결정을 한다. 모든 인사가 그렇듯이 당연히 상대평가다. 동일하게 심사 대상에 오른 이들 중에 고성과자가 많으면 후순위로 밀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운 좋게 성과대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승진은 실력과 운의 조합이지 팀장의 재량이 1도 아니란 얘기다. 

(요즘은 옛날처럼 승진 대상자한테 좋은 평가를 '몰아주는' 짓 따위는 안 한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하더라도 승진에 있어서 팀장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면, 바로 '대화'이며, 대화의 핵심은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승진에 관련한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타이밍은 승진 심사 전, 그러니까 승진 대상자들을 제출하는 그 시점부터다. 한 해동안 팀원들이 열심을 쏟은 일들에 대한 인정,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무엇이 성과인지, 무엇이 아쉬운지 미리 얘기를 해야 승진 결과에 대해 그나마 조금은 버퍼가 생긴다. 잘 한 친구들도 분명 아쉬운 점이 있고, 아무리 성과가 없는 친구도 잘 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 양쪽을 둘 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승진이 되더라도 아쉬운 점을 보완할 수 있고, 설사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분까지 좋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까. 

그 다음 대화는 승진 심사 결과가 나온 직후, 그러나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필요하다. 그러니까 막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즈음, 결과는 나왔다는데 나는 승진이 된 건지 안 된건지,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뒤숭숭한 바로 그 시점,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공존하는 그 시점이다. 팀장으로서는 당사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전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되는 시기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2주간, 가장 난감하고 너무너무 어려운 나날이었다.

일단 타이밍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승진심사 결과가 나온 직후, 윗사람에게든 인사팀에게든 최종 결과를 듣게 된 직후여야 한다. 그건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마찬가지다. 서두에 말했듯, 직장인에게 '인사'는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내 승진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물어볼 수도 없을 뿐더러, 내 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이 내 인사 고과에 대해 먼저 알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공식 발표가 나기 전까지 끝까지 모르고 있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팀장이나 부서장의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쓰이고,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좋은 소식은 그렇다 치고, 나쁜 소식도 빨리 아는 게 좋을까 싶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만 커질 뿐이다. 이왕 알게 될 결과라면 내 한 해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가장 가까이서 봐왔고 잘 알고 있는 팀장이 제일 먼저 알려주는 것이 팀원의 입장에서는 제일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때 사전 대화를 충분히 했다면 한결 수월하다. 그 팀원의 한 해 성과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결과에 대해서도 약간의 칭찬 내지는 격려의 멘트를 더하면 된다. 구구절절할 한 해의 공적을 다시금 읊을 필요가 없단 얘기다. 팀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두 번 하는 게 힘들수는 있어도, 한 번의 대화에 소요되는 에너지는 반의 반 이상 줄어든다. 직접 경험한 일이니 믿기 어렵다면 한 번 해보시길.

과거 내 팀장들은, 승진 심사 결과는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절대 말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었다. 한 때 인사팀에서도 승진심사는 팀장이 하는 게 아니므로 면담도 부서장이 직접 해야 한다는 가이드를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팀장으로서는 참 난감하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일하는 팀원들인데, 뻔히 승진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면서 모른척 한다는 것도 고역일 뿐더러, 팀원 입장에서도 궁금한데 묻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뻔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서로 눈치만 보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다. 부서장에게 면담을 미루는 것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이 때 팀장이 할 수 있는 말은 둘 중 하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또는, '미안하다.'. 이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팀장들은 입을 꾹 닫는다.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기 위해 대화 자체를 회피하는 것. 그것은 절대 바람직한 팀장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어려운 대화일수록 일단 피하고 보는 건 참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팀원은 한 두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연말이 지나면 어쨌거나 내년 한 해도 열심히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다. 잠깐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차일피일 미루다 승진 결과가 발표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억지로 수습하려 하거나, 그조차도 없이 얼렁뚱땅 새해의 업무를 시작한다면, 팀장과 팀원 사이에는 단단한 불신의 벽이 생긴다. 내 성과나 성장에 관심도 없는 팀장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는가. 

잘 한 부분은 진심으로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은 진심을 다해 독려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진심을 다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노력해도 잘 안 된다. 내 진심이 그 팀원을 좀처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팀장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타이밍은 얼마든지 의도적인 노력이 가능하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 대 사람의 일이고, 일과 감정이 뒤엉킨 복잡한 일이다. 복잡할수록 심플하고 명료한 나만의 원칙을 정해보면 좋겠다. 

헷갈리지 않게. 최대한 빨리. 대화할 때 만큼은 진심을 다해. 연말마다 찾아올 인사고과 시즌, 내 원칙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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