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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n 23. 2021

누군가 해야하지 않을까요?

리더의 말 한마디

팀원들 각자 저마다 할 일이 있고 이미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뭔가 새로운 일이 생겨날 때, 특히 일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네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닌 애매모호한 일이 갑자기 생겼을 때 참 난감하다. 분명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인 건 맞는데, 기존 역할분담에는 포함되지 않고, 그 일을 하려면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함이 자명할 때, 팀장 입장에서 선뜻 담당을 지정하기 어렵다. 모두 앉혀넣고 서론만 빙빙 돌리다 겨우 한 마디 한다. "누군가 이걸 해야하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듣는 팀원들은 다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맞아, 누군가 해야겠네, 근데 나는 하기 싫어...'


팀장은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을 통해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새로운 일,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은 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을 시킬 때는, 이걸 우리 팀이 왜 해야하는지, 누가 이 역할에 제일 적합한지, 이 일을 추가할 여력이 되는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이 일을 해야하는지, 논리를 만들어내느라 끙끙대곤 한다. 옛날처럼 하라면 해! 까라면 까! 시대는 지났다. 왜 해야하는지 이해되지 않으면 안 하거나, 대충 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누군가 해야되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정말 누군가가,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라는 곳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내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도 없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한다는 건 웬만한 열정으로는 힘든 일이다. 시키면 어떻게든 하겠으나, 굳이 지금보다 더 일을 늘리고 싶지는 않다. 왠지 나섰다가는 나만 지금 놀고있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란 건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을, 이왕이면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리더의 몫이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이 달라지며, 성과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은 '잘' 시키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꼭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고민하는 게 리더의 자리다. '누군가 해야하지 않을까요?'이 말은, 고민을 안 했다는 증거다. 우리 팀에서 해야하는 일인 건 맞는데, 누가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이 일을 왜 해야하고, 어떤 결과물을 얻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팀원 중에 누구 하나가 그 고민을 대신하여 자발적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리더가 고민하지 않는데 팀원들이 알아서 자기 일처럼 생각하길 바라는 건 너무 욕심 아닐까? 누군가 하라는 건 아무도 안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언급해서 팀원들의 마음만 무겁게 하거나, 꼭 해야하는 일을 모두가 하기 싫게 만드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말을 꺼낼 필요가 없고, 정말 꼭 우리 팀에서 해야하는 일이라면 말을 바꿔야 한다. 누군가 대신, '김대리가, 이과장이' 해야하지 않겠어? 대신, '해줬으면 좋겠어'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왜 당신이 이 일에 딱이라고 생각하는지 기대와 감사를 가득 담아 전달해야 한다. 결과물을 언제까지 만들어내자는 목표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우리 팀에서 해보겠습니다! 패기 넘치게 일을 가져와놓고, 정작 그 일을 해야하는 팀원들에게는 누군가 알아서 하라며 아무렇게나 막 던지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팀의 성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팀장의 역할이지만, 팀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도 팀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누군가 해야하지 않을까요?
vs
oo가 해주면 고맙겠어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처음부터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팀원들에게 일 시키가 미안해서, 다들 힘든 거 아는데 또 일을 주기가 민망하고 불편해서, 그래도 우리 팀에서 하긴 해야하는 일이니 그에 대한 공감을 구하는 차원에서 던진 말일 수도 있다. 제발 누군가 한 명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팀의 성과에 대해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애매모호하게 일을 던지는 것과, 담당자를 정해서 그 일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고, 팀장으로서 팀원 중 누구 하나가 그 일을 하게끔 하고싶다면, 일단 그 일을 귀하게 다듬고 포장하는 노력, 그리고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정성스레 건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그 때 표현해도 늦지 않다.


아무렇게나 던진 일은 아무렇게나 받게 된다. 막 던진 일에 대해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물며 '누군가'에게 던진 일은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다. 아무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 나 아니어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느냐, 아니면 '내가 반드시 해야하고 잘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느냐는, 리더의 말 한마디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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