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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n 29. 2021

팀원을 보내는 자세

팀원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면

우리 회사는 조직개편이 참 잦다. 프로젝트 단위로 헤쳐모여 하는 성격의 조직이 아닌데도 꽤 자주 구성원이 이동하고, 조직장이 바뀐다. 기본적으로 인재 육성의 관점이 그러하다. 영업, 마케팅, 구매, 재무, 인사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해야 우리에게 최적화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고, 그게 회사에서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조건이다. 아직은 단기 성과가 중요한 성장기 기업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단기적인 성공을 위해 인적 자원을 한껏 투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과가 나빠 조직장을 바꾸기도 한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주 바뀌는 조직 분위기에 뭔가 정신이 없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거나 안정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좀 힘들 것이고, 도전을 좋아하고 여러가지 경험을 원하는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한다면 이러한 조직문화가 고마울 것이다. 


물론 자주 옮겨다닌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일단 이동의 성격이 무엇이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일수도, 혹은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다. 조직은 냉정하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너도 나도 데려가고 싶어하고, 성과가 나쁘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여기저기 핑퐁되다가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물론 요즘은 일 못한다고 싹둑 자를 수는 없지만, 여기 저기 등떠밀려 다니는 사람은 스스로 오래 못버티고 나가곤 한다. 내가 환영받는 존재인지, 미운 오리 새끼인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있는 곳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좋은 평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우리 팀원들에게 평소에 자주 해주었던 말이다. 기획실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현업부서에 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끔찍한 징계가 아닌,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환영받는 백조로서 좋은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맙게도 모두 내 말에 공감해주었고, 막연하게나마 언젠가 현업 부서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눈치였다.

그러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회사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효율' 중심의 보수적인 인력, 예산 운영이 시작되면서, 지원조직의 인원을 현업에 전면배치하라는 의사결정이 내려졌다. 그 동안 '기회', '도전' 운운하던 낭만적인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진짜 당장 한 명을 현업 부서로 보내야 한다. 정작 우리 팀의 일은 산적해있고, 단 일주일도 인원을 뺄 수 없을 만큼 한명 한명이 귀한데 말이다. 


걱정부터 밀려왔지만 그 동안 해 온 얘기가 있기에 아무도 못 보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 팀을 지키는 것도 내 임무지만, 회사의 방침에 따라 인력을 운용하는 것 역시 내 역할이다. 우리 팀에서 성과가 제일 안 좋거나, 내가 데리고 있기 힘든 사람을 보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 팀원들은 각자의 몫을 잘 해내고 있고, 새롭게 배치될 부서에서도 환영받는 사람을 보내야만 잘 정착할 수 있을 터였다.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의 의지다. 잘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도 새로 적응하려면 힘들텐데, 등 떠밀려서 억지로 가면 본인에게나 그 부서에서나 좋을 게 없다. 


나 혼자 머리 굴려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대신 한 명씩 정성껏 면담을 해보기로 했다. 결국은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가야되겠지만, 그래도 자기가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할 지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가는 것과 그냥 보내지는 것은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한 명씩 불러 회사의 상황과 조직개편의 취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 착한 팀원들은 이 얘기를 듣더니, 만약에 선택지가 없다면 자기가 다른 사람 대신 희생하겠다는 둥, 자기가 가게되면 자기가 하던 일은 누가 하냐는 둥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라도 우리 팀에서 누군가 가는 게 모든 죄를 대속하여(?) 유배지로 떠나가는 것처럼 느낀다면, 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일을 대신해야 하니 미안해서 안 가길 원한다면, 그건 둘 다 문제가 있다. 내가 소통을 잘못한 것이다. 


조직 이동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 하는 게 아니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라도 해내는 것도, 힘든 시기를 견디는 것도, 혼란스럽고 어렵더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한다. 자기의 경력과 성장에 지금이 반드시 옮겨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판단한다면 용기내서 도전하면 된다. 만약 지금 있는 조직에서 더 배워야하고 성과를 내야한다고 판단하면 남아있는 것 또한 용기다. 그리고 설사 자기가 결정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원하지 않는데 가게 되거나, 원했는데도 남아있게 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지금의 상황을 기회라 여기고 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애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조직개편의 혼란한 시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성장의 타이밍으로 삼느냐, 아니면 회사의 억울한 조치로 치부하느냐는 자기자신에게 달렸다. 


당분간은 물론 남은 사람들이 힘들 것이다. 당장은 그 사람이 맡았던 일이 정체될 수도 있고, 성과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팀장과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감당해야 할 일이다. 적응할 때까지는 힘들겠지만 그 안에서 또 맞춰가면 된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될만큼 계속 감당이 안 된다면 일을 쳐내야 한다. 인원이 빠져나갔을 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대한 선택과 집중할 수 있도록 윗사람과 합의하는 것도 팀장이 해야할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고민해보라고 한 후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 부디, 자기 자신의 인생과 직장생활에 대해 열정적으로 고민해주면 좋겠다. 팀장으로서 나는, 그들의 고민과 결정을 무조건 응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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